작품 발표작

아름답고 고운 나의 생을 위하여|(수필)한비문학

松竹/김철이 2021. 11. 17. 00:46

아름답고 고운 나의 생을 위하여

 

                                                                                김철이

 

 

 세상 사람들은 죄다 하나같이 아름답고 고운 생을 살기를 구상하며 평생을 살아간다. 아름답고 고운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가장 먼저 선결하고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은 매일 주어지는 하루를 잘 활용해야 한다. 해가 뜨면 하루가 절로 주어진다고 해가 지면 하루가 가고 다시금 해가 뜨고 날이 밝으면 하루가 절로 주어진다고 하여 하루를 아무런 감정 없이 무심히 소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소중하듯 우리 삶의 테두리이자 보금자리인 하루하루를 우리의 인생을 대하듯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가 없으면 일 년 열두 달도 내 생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 유일하게 눈에 차지 않아도 볼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날마다 우리를 찾아주는 하루를 소중하게 여긴다면 분주히 하루의 문을 여는 사람들과 초록으로 물든 무성한 초목의 싱그러운 둥지 속에 잠을 깨고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하루를 무작정 지저귀는 작고 소박한 새들의 아침 문안 인사가 세상 무엇보다 사랑스럽지 않을까!

 

 인생의 도화지에 희망을 그린 하루하루가 소박한 행복과 축복으로 삶의 텃밭을 채워질 것들을 예상하면서 세상 만인들의 하루를 축복한다면 세상은 분명히 한층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밤사이 누군가 몰래 대문 한가운데 붙여 놓은 여러 장의 광고지를 살짝 떼어 내며 광고지들을 힘들여 붙여 놓았을 그 누군가의 손길을 생각해 보는 마음도 하루를 아름답고 소중하게 엮어가는 씨앗일 것이다.

 

 세상에 유독 나 혼자만이 힘들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세상 공동운명체인 우리는 그만큼 초라해지고 작아질 것이며 가슴에 피울 수 있는 삶의 꽃 이야기와 행복의 계절 또한, 초라한 누더기를 걸친 채 추운 겨울 벌판에 홀로 서 있는 허수아비와 같을 것이다. 사실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같은 생각을 지니고 있지만, 자신의 기쁨은 초라하고 작게 느끼며 자신의 슬픔은 세상 무엇보다 크게 느끼듯이 자신이 힘들고 불행하다고 여길 때면 마치 허허벌판에 홀로 버려진 것처럼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외롭고 서럽게 느껴지며 작은 일에도 걸핏하면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오랜 습관처럼 매일 시작되는 하루는 세상 누구나 자신을 위하여 불평을 거둬내고 강풍에 쉼 없이 흔들리듯 하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 본인들의 존재를 향해 사랑과 희망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감사와 긍정의 조건들을 찾아냈으면 한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 일상에서 감사 거리를 찾지 못한다면 누군가 내게 만금(萬金)의 은혜를 베푼다 하여도 감사는커녕 당연지사로 받아들일 것이고 하루하루 만복(萬福)의 생을 누리고 있다 한들 매사를 부정적으로밖에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환경에 굴함 없이 간직한 꿈을 향하여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만이 앞으로 한 걸음씩 걸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향하는 인생의 여정에서 못내 지쳐 멈춰 서기도 하겠지만, 세상 그 누구라도 그 길이 올바른 길이라면 결절대 물러서지 않는 의지로 또다시 인생 여정의 걸음을 떼어 놓을 수 있는 용기를 내는 인격을 지닌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가슴에 간직하고 있는 따뜻한 사랑의 불씨를 끄지 않은 한 닥친 역경과 시련마저도 그 불꽃을 강하게 피우는 마른 장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이미 알고 있다. 하루에 주어진 역경과 시련의 끈질김이 아무리 질기다 한들 신은 우리가 이겨낼 만큼의 역경과 시련을 승인한다는 것이다.

 

 한 인격체로 이 세상에 온 우리는 저마다 개성과 인격을 지닌 단 하나뿐인 소중한 사람임을 잊지 말고 매일매일 희망을 그려가는 너그럽고 자랑스러운 하루로 꾸려갔으면 한다.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매일 각자에게 주어진 하루를 하루가 가면 하루가 반드시 찾아줄 거라는 착각과 망각 속에서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데 우리 인생에 있어 하루의 존재는 인생을 시작하는 시발점(始發點)이자 인생을 마감할 종착점(終着點)이라는 것이다.

 

 해외 한 봉쇄 수도원에 열일곱 살의 청춘의 나이에 입회하여 선종한 나이인 여든아홉 살까지 자그마치 72년 동안을 오직 신(神)만을 위해 칼바람이 미친년 널뛰듯 하는 겨울철에도 발에 양말 한 켤레 걸치지 않고 폐쇄 공간에서 평생을 노동과 기도로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세상을 살다 간 한 수도자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 시발점(始發點)은 자의(恣意)로 정할 수 없었으니만큼 인생의 종착점(終着點)만은 자신이 자의(恣意)로 정한 하루가 되게 해달라고 팔십 평생을 기도했고 그 하루를 얻기 위해 덧없이 맞닥뜨리는 하루에 갖은 정성을 다 쏟았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거침없고 쉴 새 없이 찾아오는 하루라 하여 인생의 살점과 같은 그 하루에 소홀히 대접한다면 우리의 전 생애를 푸대접하는 거라 하셨다.

 

 세상 사람 중에 자고 일어나 눈만 뜨면 자신의 삶터에 이미 부여돼있는 하루에 대해 골똘히 고민해본 이는 지극히 드물 것이다. 그랬기에 덧없이 흐르는 세월은 무상하다 여기면서도 하루의 존재는 그리 중요시하지 않는 것이 우리 세상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의 소중함을 인지하고 하루를 그냥저냥 푸대접한 이가 있다면 하루빨리 하루와 화해하고 아름답고 고운 생을 위하여 하루가 흘러갈 때마다 나의 살점이 떨어져 나간 것처럼 안타깝고 애처로이 여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