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천사가 있다고 말해주세요
윤원진 비안네 신부님
중학교 1학년 때 나의 패션은 아주 과감했었다.
꽃무늬 남방에 흰 바지를 입고 다녔고 아침마다 드라이로 세팅한 머리에 무스를 잔뜩 발랐었다.
나는 지금도 분명히 기억한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오려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어떤 사람들이 내 어깨를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갔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함께 있던 친구 두 명도 데리고 갔었는데 도착한 곳은 학교 옆 뚝방이었다.
나무들이 줄지어서 있는 그곳에서 나는 흠씬 두들겨 맞았다.
얼굴은 멍이 들었고 광대뼈는 부어올라 욱신거렸다.
나를 때렸던 그 사람들은 학교 선배들이었다.
내 패션이 하도 과감해서 '날라리'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멍든 얼굴을 가리고 집으로 오는 길 내내 무서웠다.
또 누가 갑자기 나를 잡아챌지 몰랐기 때문이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따라오라고 할까봐 땅을 보고 걸었다.
집에 도착했더니 시골에 사시는 할머니께서 우리 집에 와계셨다.
지금도 기억나는 할머니의 환한 미소...
나는 울컥 울음이 터져 나왔지만 애써 웃으며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할머니는 따라오지 않으셨고, 나는 한참을 방에 있었다.
다음날 아침을 먹는데 엄마는 여전히 바빴다. 우리 남매의 밥을 차려주고 도시락을 싸야 했으며, 출근준비를 해야했으니 말이다.
내 얼굴이 이렇게 퉁퉁 부었고, 눈 아래에는 멍이 시퍼랬는데도 아무도 왜 그러냐고 물어봐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내가 먼저 말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버스에서 넘어졌다'라고 두 눈을 굴리며 얼굴을 보여주었다.
엄마는 나를 흘깃 보더니 '정말 멍들었네'라고 말했다. 그전까지는 몰랐었나 보다.
문제는 집을 나와 학교로 가는 길이었다.
그 선배를 마주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선생님이 물어보면 뭐라고 해야 할까...
많은 생각을 했었지만 그 이후의 일들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이후로 성경책을 읽기 시작했다.
밤이면 도둑이 들까봐 무서웠고, 낮이면 끌려갈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항상 무서운 마음이 가득해서 집에 있던 성경을 폈는데, 그만 울어버렸다.
아주 오랫동안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와 한참을 울었다.
너무 무서워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었는데, 아무에게도 우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꾹꾹 눌러 참았었는데
이 구절을 읽고는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분께서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어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너는 사자와 독사 위를 거닐고 힘센 사자와 용을 짓밟으리라. (시편 91편)
그리고 눈을 감았는데 마치 천사가 내 뒤에서 내 어깨를 펴주는 것 같았다.
그의 강한 팔을 내 어깨 아래에 넣고 한없이 기죽었던 영혼에 힘을 넣어주는 것 같았다.
다음 날은 길을 걸으면서도 무섭지 않았다.
나보다 덩치 큰 형들이 모여있는 것을 보면 내 어깨를 만지며 '수호천사님, 내 어깨를 잡아주세요. 이 어깨를 펴주세요'라고 속삭였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꼭 말해주세요.
너의 곁에는 수호천사가 있다고...
보이지 않지만 너를 지켜주는 존재가 있다고...
무섭고 지친 날에는 그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꼭 알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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