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만일 수호천사가 말한다면 따르겠습니까|윤원진 비안네 신부님

松竹/김철이 2021. 10. 1. 21:57

만일 수호천사가 말한다면 따르겠습니까

 

                                                                      윤원진 비안네 신부님

 

 

도대체 수호천사는 어떤 식으로 내게 말을 거는 것일까.
그분께서는 나의 앞에 천사를 보내어 지키고 당신이 마련한 곳으로 데려가겠다고 하셨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천사를 보내어,
길에서 너희를 지키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너희를 데려가게 하겠다.


그런데 내 안의 생각이 천사의 인도인지, 그저 내 느낌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분께서는 '어린이처럼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나는 어렸을 때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믿지 않았다.
다만 동생과 양말을 걸어놓는 것이 재미있었을 뿐이고 밤중에 일어나 그 양말 속에 작은 선물을 넣어두고 혼자 기뻐 키득거렸을 뿐이다.
어린이처럼 순수한 마음이어야 수호천사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일까.
나를 이끄는 수호천사가 보이려면 어린이의 눈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그분께서는 '어린이'란, '자신을 낮추는 이'라고 하셨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하긴 내 앞에 수호천사가 나타난다 해도, 큰소리로 내게 말한다 해도
나는 천사마저 설득하려들지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천사를 알아볼 수 있을지보다 과연 천사의 말을 들을 준비는 되어있는지,
천사의 뒤를 따를 마음은 있는지 생각해보아야겠다.
오히려 수호천사에게 '나를 따라오세요. 이 길이 맞아요'라며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자신이 틀릴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즉 내가 수호천사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은 내 생각일 뿐이고 그분의 뜻은 전혀 다를 수도 있음을 수용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만이 수호천사에게 도움을 청한다.
나를 지켜주고 나의 기도를 전달해달라고 조르는 것만이 아니라
나는 워낙 고집이 세서 수호천사의 말도 듣지 않을 테니 부디 나를 잘 타일러달라고 말이다.

아빠와 함께 병원 엘리베이터에 탄 어린이가
아빠의 큰 손을 작은 두 손으로 꼭 잡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아빠, 우리 병원 가는 거야?"
아빠는 말했다.
"아냐, 걱정하지마. 소아과 가는 거야"
그러자 어린이는 "아... 그렇구나."라고 말하며
총총걸음으로 아빠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아빠를 올려다보며 웃는 어린이의 얼굴에 나도 행복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