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묵상 듣기 : youtu.be/zN6dUysa2cM
신앙생활을 하며 사람들은 여러가지 기도와 신앙에 관계된 내용들을 익히고 실천하며 삽니다. 그 중에는 매일 기도와 같이 규칙적으로 해야 하는 것과 또 사람들 사이에 효과좋은 것으로 알려진 기도가 있는가 하면 특별한 시기에 하게 되는 행동들과 습관들이 존재합니다.
이런 관습들이나 신앙행위는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고 변화하곤 하는데, 그 중에는 아주 오래된 것들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단식이 그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에도 이스라엘의 신앙 생활 중 큰 몫을 차지하던 것이 단식이었고, 이는 바리사이들도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도 함께 하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단식은 완전한 단식과 부분적인 금식이 있을 수 있고, 이 모든 것은 생명의 의미를 담은 사람의 극기의 대표적인 신앙 및 의지의 표현을 말합니다. 하느님께 기도하며 단식을 한다면 믿음의 의지를 드러내며 하느님께 생명을 봉헌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이 몫으로 자선을 베푸는 의미까지 더해져 더욱 깊은 신앙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들과 같은 시기에 단식을 하지 않았던 예수님과 그 제자들에게 사람들은 의문을 가집니다. 하느님을 믿으면서 단식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대신 먹고 마시는 일이 많았던 이 공동체에서 거룩함을 찾고 하느님을 믿는 이의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았던 듯 합니다. 게다가 죄인들이 많은 공동체였으니 그들의 신앙심은 의심을 살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들의 의문에 당연하다는 듯 답하십니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말입니다. 혼인잔치 중의 사람들이 단식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 답이었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기뻐하며 먹고 즐길때라고 이야기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도 단식할 때가 올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금방 십자가 사건을 떠올리게 됩니다. 우리가 하는 단식은 바로 이 십자가에 주님을 잃었을 때를 생각하며 하게 되는 단식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 단식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하던 단식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성을 드러내고 의지를 보이는 봉헌의 단식이었다면 예수님을 두고 하는 단식은 곡기를 끊는 슬픔의 단식에 가깝습니다. 곧 주님을 잃었고 그 상태를 그대로 느끼며 밥을 먹을 수 없는 상태의 단식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사라진 세상. 스스로 구원을 놓쳐버린 세상에서 주님을 그리워하며 애타는 마음이 단식의 이유가 됩니다.
같은 듯 보이지만 이 두 단식의 차이는 큽니다. 이유가 다르기에 같은 모습이지만 같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차이를 새 것과 헌 것의 차이로 이야기하십니다. 우리가 정성으로 봉헌하던 단식이 실제 아픔과 탄식의 간절함으로 바뀌었고 이것은 하느님에 대한 지식이나 습관적인 신앙과 실제로 느끼는 절실함에서 나오는 신앙의 차이를 말합니다. 학습과 관습이냐 아니면 경험과 실제에서 나오는 것이냐는 같은 신앙의 서로 다른 모습을 드러냅니다.
누군가는 이것도 저것도 다 좋다고 말할 것이고, 좋은 것만 골라내어 함께 사용하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예수님은 그럴 수 없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옛 것에 길들어진 사람들은 옛 생활을 좋아하게 되고, 새로운 것에 눈을 뜨게 된 이들은 현실에서 그 모든 것이 살아있는 것으로 느끼고 살게 되리라 이야기하십니다.
어느 하나가 부정되지는 않겠지만 둘 중 우리는 그리스도의 단식에서 나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기억할 이유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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