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가 서울시 중구에 있는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제21대 총선 사전투표에서 투표권을 박탈당한 피해 당사자들과 함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이가연 제21대 사전투표 날, 발달장애인들이 현장에서 투표 인력 지원을 저지당해 투표를 못 하거나 사표 처리되는 사례가 속출하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아래 중앙선관위)에 시정권고를 요청하며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에 진정했다. 14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가 서울시 중구에 있는 인권위 앞에서 제21대 총선 사전투표에서 투표권을 박탈당한 피해 당사자들과 함께 중앙선관위를 규탄하며 진정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장추련은 사전투표가 진행된 지난 10일부터 11일까지 수많은 참정권 피해 전화를 받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투표소에 물리적 접근이 어려웠던 상황들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부모님으로부터의 전화가 빗발쳤다”라고 알렸다. 장추련은 “발달장애인 유권자들이 지난 2016년 20대 국회의원선거, 2017년 대통령선거, 2018년 지방선거와 마찬가지로 투표소 인력지원을 받기 위해 가족이나 활동지원사와 함께 투표소에 들어가 투표를 하려고 했지만, 이번 21대 총선에서는 선관위 직원들이 도리어 선거지침을 근거로 발달장애인 동행인들의 지원을 가로막았다”고 밝혔다. 장추련에 따르면 21대 총선 선거사무지침에서 기존 발달장애인에 대한 투표보조 내용이 삭제되었으며, 이로 인해 사전투표 기간 중 많은 발달장애인들이 정당한 편의제공을 받지 못해 투표권이 사표가 되거나 권리를 박탈당하는 사태가 속출했다는 것이다. 중앙 선관위의 변경 전 선거사무지침. “점자를 읽을 수 없어 혼자서 기표할 수 없는 시각장애인과 신체 장애(지적·자폐성 장애 포함)로 자신이 혼자서 기표할 수 없는 선거인은 그 가족(1인도 가능) 또는 본인이 지명한 2인에게 투표를 보조받을 수 있음을 안내함(특수형 기표용구 교부 가능).”이라고 적혀있다. 해당 내용 중 ‘지적·자폐성 장애 포함’은 현재 지침에서 삭제되었다. 사진제공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현행 공직선거법 제157조 제6항에는 시각 또는 신체의 장애로 인해 자신이 기표할 수 없는 선거인은 그 가족 또는 본인이 지명한 2인을 동반하여 투표보조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발달장애인은 해당 조항의 ‘신체장애’ 분류에 들어가지 않아 인적 지원을 받지 못하자 장추련을 비롯한 장애인단체들의 끈질긴 문제제기 끝에 2016년경부터 중앙선관위는 시각 또는 신체장애 외 ‘발달장애(지적·자폐)’도 투표보조를 받을 수 있도록 선거사무지침을 개정했다. 그런데 선관위가 이번 총선을 앞두고 해당 내용을 고지 없이 지침에서 삭제하여 발달장애인은 투표보조 지원을 받지 못한 것이다. 이에 김성연 장추련 사무국장은 선관위가 투표 과정에서 발달장애인 당사자나 보호자에게 위압적으로 대하고, 이러한 과정에서 발달장애인들이 제대로 투표를 하지 못해 그 자리를 떠나거나 표 자체를 사표로 만들게 됐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국장은 “선관위에 해당 지침이 아무런 논의 없이 삭제된 점을 강력하게 문제제기했지만, 오히려 선관위는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라며 “만일 부모가 투표 과정에서 조력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다면, 공적 지원 체계를 강화하고 선거 관련자가 투표지원 교육을 받는 등 다른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단지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발달장애인을 투표에서 배제하는 것은 명백한 참정권 및 투표권의 침해”라고 설명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가한 발달장애인 피해 당사자는 사전투표를 하러 갔다가 투표보조를 받지 못해 자신의 표가 사표 처리되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중증 발달장애인이자 뇌병변장애인 김예람 씨는 “손이 불편해서 엄마와 함께 기표소에 들어가려고 하자 투표소에 있던 한 직원이 ‘안 돼요’라고 소리 질렀고, 이에 도와달라고 부탁했지만 도와주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결국 김 씨는 아무런 투표보조 없이 떨리는 손으로 기표하려 했지만 제대로 할 수 없어 무효표 처리되었다. 김 씨는 이번 인권위 진정에 진정인으로 참여했다. 발달장애인 당사자인 김대범 피플퍼스트서울센터 센터장은 “해리포터에 나오는 덤블도어는 시간을 뒤로 돌리는 능력이 있다”라며 “나도 시간을 뒤로 돌려 발달장애인이 선관위로부터 쫓겨난 상황을 상상해보니 선관위 직원들이 발달장애인은 투표할 권리도 없다는 혐오의 생각을 그대로 내비쳤을 것 같다”라고 분노했다. 이어 김 센터장은 “저 또한 사전투표를 직접 해보니 선거용지가 너무 길어서 헷갈렸으며 봉투에 용지를 넣고 테이프로 붙이는 게 어려워 바닥에 투표용지를 두 번이나 떨어뜨렸다”라며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당황하지 않도록 모의투표 제도와 공적 조력인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초록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누군가는 발달장애인과 비발달장애인에게 똑같이 한 표씩 주어지기 때문에 평등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간접차별도 차별로 분류하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발달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제공을 하지 않는 선관위의 행위는 명백한 차별”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장애를 고려하지 않고 도리어 지침에서 편의지원을 제외한 선관위는 장애인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했다”라면서 인권위가 선관위에 강력한 시정권고를 내릴 것과 함께 선관위에도 지침 마련을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이 끝난 뒤 장추련을 포함한 13명의 진정인은 중앙선관위에 △지침의 갑작스러운 변경에 대한 책임 있는 사과 △장애인단체나 당사자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지침 변경 과정에 대한 투명한 공개 및 의견취합을 위한 협의체 구성 △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한 모든 필요한 편의제공 담은 지침 마련 △선관위(지자체 포함)의 장애 감수성 점검 및 전 직원에 대한 장애인인권교육 시행 등을 요구하며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 발달장애인 피해당사자인 김예람 진정인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