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코로나 안에서 성직자가 성직자들에게...

松竹/김철이 2020. 3. 21. 16:36

코로나 안에서 성직자가 성직자들에게...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3월 한달. 그것도 일년 중 가장 중요한 사순절의 시기에 맞이한 이 위기가 길어짐에 따라 부활절 조차 함께 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려 옵니다. 이 시기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중요한 만큼 커다란 충격이 될 것은 분명합니다. 성당 역시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교황님은 신자 없는 부활절을 보내실거라 하십니다. 우리도 준비하고 각오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사정이 나아진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그냥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시간입니다. 


온 세상이 이제 이 위기의 현실에 직면하고 늘어나는 확진자 수에 곱지 않게 바라보던 우리나라를 부러워할 지경이 된 것은 순식간이었습니다. 그렇게 확진자 수가 줄어들고 있고, 완치자가 그보다 더 늘어나 전체가 일상으로 돌아가는 전환점을 돌고 있는 지금, 그럼에도 또 다른 감염의 원인과 희생자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주인공들이 다름아닌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할 일은 태산인데, 그럼에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습니다. 천주교 신부이고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모든 이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여전히 지금이 이런 이야기를 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말입니다. 이 역시 지금 필요한 이야기라면 누구라도 먼저 꺼내야 할 이야기인 듯 싶어서 말입니다.  


비판이 필요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미 많이 하고 있고 거의 전부가 서로를 비난하거나 종교까지 무용론을 주장하는 지경에 와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가 한 곳에 모이는 것은 중요합니다. 누구는 금전적인 문제라고 말하고 그 말 하나면 모두가 아무말 없이 비난에 동조하고 말지만. 사실 모임이 금전적인 이유를 넘어서는 중요한 요소인 것은 분명합니다. 같은 믿음과 삶을 공유하는 이들이 서로 만나 한 마음 한 뜻을 이루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초대교회의 전통에서부터 우리의 모임은 안식일 다음날, 곧 주님의 부활의 날에 모여 주님을 기억하고 주님 안에서 함께 살고자 다짐하고 기도하며 주님이 주신 생명의 빵을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만남은 사랑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하느님의 자녀들의 목숨을 건 만남이었고 그리스도가 여전히 세상에 살아계심을 드러내는 소중한 자리였습니다. 


그럼에도 박해와 시련의 시기에 우리는 각자 그리스도의 지체로 살면서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사랑의 실천과 기도로 세상에서 하느님의 빛을 비추고 소금으로 세상을 살려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곧 우리의 만남은 소중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함께 위기를 겪어내는 중입니다. 하느님의 백성들은 이 시기에 세상을 위로하고 어느 때보다 사랑의 실천으로 많은 이들을 살려내는데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행동하는 예언자로, 하느님의 뜻을 따라 다른 이들을 섬김으로 살려내는 왕으로, 하느님께는 기도하고 사람들에게는 축복과 위로를 건네는 사제로 살아야 합니다. 지금은 우리의 진짜 신앙적인 행동과 삶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 시기에 걱정과 불안에 떠는 이들에게 교회가 해야 할 일은 '하느님이 계시니 우리만은 안전하다'는 말도 되지 않는 이기적인 약속과 기도를 청하는 일이 아닙니다. 이럴 때 죽기를 각오하고 모여서 우리의 신앙을 세상에 보여주자는 영웅놀이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신자가 없다고 신앙이 사라집니까? 그렇게도 믿음이 없습니까? 비난하려 하지 않아도 어이가 없어서 하는 말입니다. 왜 교회가 돈 때문에 모이려 한다는 모욕적인 언사를 듣게 만듭니까? 그게 현실입니까? 그게 사실입니까? 


성직자는 말해야 합니다. 지금은 머물러라고.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자고 말해야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성직자들이 필요합니다. 거짓 예언자들처럼 행동하지 말고, 결국 자신만 아는 왕처럼 굴지말고, 비겁하게 목숨으로 하느님의 은총을 시험하는 이상한 사제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성직자라면 백성들을 위해 먼저 행동해야 합니다. 실천하는 믿음이란 위험을 담보로 신앙을 설명하고 신앙심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보다 먼저 백성을 위로하고 그들을 가장 안전한 곳으로 이끌며 그들의 부족함조차 하느님 앞에서 용서를 청하는 이어야 합니다. 


지금 세상은 난세의 영웅이 아닌 사랑으로 사람들을 지켜내는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우리 곁을 지켰던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사랑했던 그리스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