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코로나와 줄서기

松竹/김철이 2020. 3. 10. 09:40

코로나와 줄서기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저녁 문자로 누나가 비오는 날 밖에서 줄을 서 있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전화를 걸어 얼마나 줄을 섰는지 물어보니 한 시간 쯤 서서 두 장 가지고 집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마저도 뒤에 몇 사람을 끝으로 물량이 끝났다는 이야기에 다행이라고 통화를 끝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것이 바뀌고 사람들은 들려오는 소식에도 조금은 무딘 마음과 인내심의 끝을 보는 듯 화가난 모습들도 보이고 있습니다. 방송이든 인터넷이든 뉴스를 보아도 부정적인 소식들과 견해들이 많고 노력하는 이들을 비춰주면서도 긍정적인 신호를 발견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우리에게 부족하고 모자란 것만 있진 않을텐데도... 우리는 참 어둡기만 합니다. 


외출을 자제하고 있지만 차를 탄 채 밖을 다니다 보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지치게 하는 이 줄서기를 보며 전혀 다른 생각을 합니다. 세상 위기 속에 있는 우리지만 저렇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은 잠시라도 사람을 웃게 합니다. 



너무 상황에 맞지 않는 감정이라 말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참 좋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부족한 '칭찬'을 해볼까 합니다. 



우리는 분명 위험하고 다급한 상황에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의 문제이기에 당연히 답답하고 화가나는 현실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이 생명은 모두의 문제이지만 결국 시대의 흐름은 '나'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내 생명이 귀하기에 이 위기를 누가 만들었건 우리는 화가 나있고 그 탓을 돌리려 합니다. 


누가 시작했는지 몰라도 또 어떻게 된 것인지 잘 몰라도 누구든 이 욕을 받아야 합니다. 가장 큰 몫은 이 나라의 지도자와 그와 함께하는 사람들일 겁니다. 굳이 이유를 말하지 않아도 들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사람들이 화가난 것은 그 이유를 몰라서 그런 건 아니니 말입니다. 그 짐을 짊어지고자 그 길에 나섰으니 이 무게는 잘 견디기 바랍니다. 이 상황을 이용해야 하는 딱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위험은 같이 당하는 중인데도 그리 욕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것이 자신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는 다 헤아릴 이유가 없지만 그들도 같은 보호를 받고 있음에도 함께 하기 보다 험담과 시비로 시간을 보내는 이들과 그들의 말을 크게 전해주는 이들도 뭔가 필요해서 이럴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억울한 죽음도 겪었습니다. 나이 들어, 힘이 없어, 면역력이 약해, 왜 이렇게 자신의 상태가 심각해졌는지 물어보지도 못했던 이들의 죽음도 겪었습니다. 그리고 또 겪는 중입니다. 병균 하나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미 몇차례 당했음에도 외양간을 고칠 이유가 없다며 넘어간 이유로 우리만이 아닌 온 세상이 위기에 쳐했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나라를 책임진 이도 그 때를 함께 겪어냈던 사람들인데 누구 하나도 윗자리에 있을 때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살기 위해 줄을 서는 중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에게 해야 할 공통의 일은 줄을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꽤 이 줄을 잘 서는 중입니다. 화가난 사람도 줄을 이탈하지 않습니다. 물건이 모두 급하고 필요하지만 줄을 무너뜨리며 앞으로 끼어들지 않습니다. 생명이 위험하다고 말하면서도 그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면서 줄을 서는 우리입니다. 내 앞에서 줄이 끊어지고 물량이 떨어질지 몰라도 앞으로 나서지 않습니다. 마스크가 내 앞에서 끝이나고 다른 약국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할테지만 우리는 또 거기서 줄을 섭니다. 


결국 '나'라면 우리의 이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당연히 싸우면서도 우리는 그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아니 필요한 만큼을 차지하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줄을 섭니다. 우리는 아무도 모르게 '함께 살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줄을 섭니다. 그리고 차례를 기다립니다. 




위기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많은 나라가 우리에게 문을 닫았다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왕따라고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끼리 이 위기를 이겨보면 어떻습니까? 최소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된다는 기본을 지키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이들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곤욕스럽고 또 그들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어떻게도 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 숨바꼭질은 꼭 끝나고 숨은 것은 드러난다는 확신으로 이제 제대로 잡아보면 어떨까요?


최소한 줄서는 우리라도 칭찬을 좀 합시다. 그리고 애를 쓰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랬듯 같다는 것도 좀 생각합시다. 나라의 대통령이 이 사람이든 저 사람이든 그 때도 사람들의 생명을 책임졌던 이들은 지금의 이 사람들이었음을 생각하면 이제 우리 입에서 칭찬과 격려, 그리고 위로를 좀 해도 될 듯 싶습니다. 



우리는 잘하는 중입니다. 위기가 아니라 원래 잘하는 사람들이기에 다시 우리는 서로를 확인하는 중입니다. 그 때와 지금의 차이가 있다면 그 때는 함께 뭉쳐서, 이제는 사회적 거리를 두면서 함께 한다는 것 뿐입니다. 우리의 줄서기를 전 세계에 자랑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줄이 줄어드는 만큼 우리 손에 쥐어지는 마스크가 두 개에서 세개 아니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기뻐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스크를 쓰지 않기로 해서 줄을 서지는 못하지만 마음은 그 줄 맨 끝에 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