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松竹/김철이 2020. 2. 28. 01:09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강론 듣기 : https://youtu.be/A2al7xbk4MM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묻습니다. 자신들의 스승인 요한이 하느님의 사람으로 증언한 분의 모습이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바리사이들보다 더 훌륭한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이들이었고 그러기 위해 주님은 그들의 스승과 같은 가치를 보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공손한 질문 속에는 다소의 불만도 보입니다.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자유로운 분이셨음은 복음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그런 주님과 함께 다녔던 제자들에게 단식과 같은 신앙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은 곧 주님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공손한 듯 보이는 이 질문에 주님은 담담하게 대답하십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도 단식의 시기가 올 것이라 이야기하십니다. 그 말씀의 부분은 이렇습니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그러면'이라는 말은 그 때에는 당연히 그 때가 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이런 접속어들은 그 다음 이어지는 것이 '당연히' 일어나야 할 때 일어난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곧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오면 제자들도 단식할 것이라 말씀하시는데 그 때의 단식은 '정성'이 아니라 당연히 곡기를 끊는 '슬픔의 상태'를 말합니다. 그 때가 예수님의 수난이 되리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아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그 때의 단식은 슬픔에서 '기억'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지극한 정성의 단식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기억하기 위한 단식이 되어 우리에게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단식은 사랑의 하느님을 눈 앞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슬픔이자 또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마지막까지 남겨주신 생명의 빵에 대한 허기짐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겐 '그러면'의 의미가 부족한 듯 보입니다. 



주님의 삶을 기억하며 사랑의 허기짐과 슬픔보다 주님의 고통만 기억하는 단식이 되는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잃은 제자들의 마음. 그 마음을 기억하는 단식이 우리에게도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다시 찾아오신 주님의 부활의 기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다시는 사랑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의 단식이 될 것입니다. 



숟가락을 놓을 때는 그 이유가 분명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