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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양의무자 기준은 완전 폐지될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힘으로

松竹/김철이 2019. 12. 31. 16:59
부양의무자 기준은 완전 폐지될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힘으로
[2019년 결산]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위한 재정 마련, 누구의 몫인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사회적 합의 필요하다’는 청와대
등록일 [ 2019년12월31일 16시26분 ]

지난 10월 17일, 우리는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위한 청와대 앞 농성에 돌입했다. 농성에 돌입한 이유는 자명했다.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지 않았고, 폐지를 위한 계획 역시 후퇴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성 64일만인 10월 19일, 청와대의 답변에 대한 입장을 내는 것으로 농성을 마무리했다.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등은 지난 19일, 청와대 사랑채 분수 앞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위한 청와대 앞 농성을 마무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활동가들이 ‘시효만료 정상가족 중심복지’라고 적힌 액자 피켓을 들고, 이른바 ‘정상 가족’을 뜻하는 가족 동상의 모습을 액자에 담으려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경과와 쟁점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100대 국정과제의 하나였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단계적 폐지’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두고 지루한 씨름을 거듭하고 있다. 대통령 후보였던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전히 폐지할 것과 당론 채택 계획을 밝혔다. 대선에서 당선된 뒤 국가기획위원회(대통령 인수위원회)는 100대 국정과제에서 2018년에 주거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고, 생계·의료급여에서 소득 하위 70% 이하 노인, 중증장애인 가구에 대해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왜 완전 폐지에 대한 계획이 없는지 항의하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행동’과의 면담에서 국가기획위원회는 당면한 과제만을 담고 있는 것임을 강조했다. 2017년 8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의 광화문농성장을 방문한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은 2020년 마련될 기초생활보장제도 2차 종합계획안에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의 계획을 넣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난 9월, 보건복지부의 보도자료를 통해 부정됐다. ‘생계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등’으로 한정시켜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고려하지 않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이 상황에 대한 보건복지부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위해 싸워온 시민사회단체의 인식은 판이하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10월 22일 국정감사에서 청와대 농성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 ‘일부 사람들에게는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계획도 있’기 때문에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등’이라고 쓰여 있기 때문에 생계급여로 한정한다고 읽으면 안 된다거나,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만 폐지하는 것도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의 한 가지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억지 주장을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보건복지부는 ‘예정보다 빠른 속도’로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를 추진 중이라고 반발한다. 이는 사실일까?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 왜 효과가 없는가?

 

2015년부터 현재까지 추진되어 온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및 완화 내용

 

위 표는 2015년부터 현재까지 추진되어 온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및 완화 내용이다. 폐지가 실제로 시행된 것은 주거급여 하나뿐이고, 생계·의료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는 중증 장애인이나 노인 등 일부 인구집단만을 대상으로 시행되었다. 여기서 보건복지부가 주장하는 ‘예상보다 빠른 속도’는 2019년 의료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가구에 중증장애인이 있을 때’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하는 것이 2022년에서 2019년으로 앞당겨진 것이다. 이러한 완화조치로 수급자 숫자는 과연 늘었을까? 2018년 9월과 2019년 11월을 비교해 보면 주거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로 수급자 숫자가 24%가량 증가했지만, 생계·의료급여에서 수급자 수의 의미 있는 변화는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부 완화를 시행했기 때문에 사각지대가 해소되어 가고 있다는 복지부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시행 시기를 다소 앞당긴 완화안은 지금까지의 조치가 효과를 내지 못하자 추가한 고육지책에 불과하다.

 

2018년 9월과 2019년 11월의 생계/의료/주거/교육급여 수급자 수.

그간 정부의 완화안은 극히 일부의 인구집단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중증장애인 가구가 수급을 신청할 때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하는 2020년의 완화안은 단 1만 8천 가구만을 대상으로 한다. 주거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따른 신규 수급자가 60만 명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했던 것에 비해 32만 명 증가로 그친 것을 고려한다면, 이 역시 과대추계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중증장애인 부양의무자 기준 우선 폐지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위한 모든 추계 모델 중 가장 적은 사람을 수급으로 진입시키는 방식이다. 즉, 가장 적은 예산이 든다는 점이다. 복지부는 이를 두고 ‘가장 필요한 사람 먼저’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언뜻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이러한 완화 방식에는 중증장애가 아닌 경증장애를 판정받은 모든 사람들을 제외한다. 소득 중단과 노인성 질환으로 65세 이상의 노인과 별반 다르지 않은 신체나 생활을 가진 장년 빈곤층 역시 제외한다. 무엇보다 빈곤은 장애 여부를 넘어 빈곤에 처한 모든 이들에게 동일한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근로능력 여부와 무관하게 모든 이들의 기초생활을 보장해야 한다는 전제를 뒤집고 ‘가장 필요한 사람’이라는 말로 미묘히 장애나 질병 여부에 따른 위계를 정당화한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현재 빈곤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소득이나 재산 때문에 수급자조차 되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장애 여부, 심지어 경중에 대한 판단이 급여 접근에 제약을 두는 요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재정적 뒷받침, 사회적 합의의 주어는 누구인가?

64일간의 농성 동안 총 네 차례 청와대에 질의서를 전달했지만 청와대는 단 한 차례도 답변하지 않았다. ‘2019 국민과의 대화’에 제출한 질의서에 대해 돌아온 답변에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위해 ‘재정적 뒷받침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대통령의 공약이었고, 이에 대한 이행 의지와 계획을 묻는 데 사회적 합의라는 주어 없는 답변이 돌아온 것이다. 심지어 11월 CBS의 의뢰로 진행된 리얼미터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정책에 대한 지지도는 55.5%로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보다 높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대한 청와대 답변서.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 또는 폐지를 위해서는 재정의 뒷받침, 사회적 합의 등이 필요합니다”라고 쓰여 있다. 사진 김윤영

 

재정 마련은 누구의 몫인가?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근로장려금 지원대상자를 크게 확대하며, 해당 예산을 2018년 1조 2천억 원에서 2019년 2조 8천억, 2020년 4조 5천억 원으로 크게 증가시키고 있다.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전면 폐지는 1조 이하의 재정이 소요될 것으로 추계되지만, 기획재정부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너무 많은 재정이 소요되어 곤란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획재정부 사업인 근로장려금을 매년 수조에서 수천억 단위로 인상하는 데는 아무런 사회적 합의도 요구하지 않는다. 절대빈곤층의 많은 숫자가 65세 이상 노인가구이거나 근로소득이 없기 때문에 근로장려금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빈곤층 가운데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정책의 우선순위가 배정되지 않은 것이다. 결국 예산 문제는 정책 우선순위의 문제이며, 기획재정부는 빈곤층에게 재정을 투여하려는 노력이나 관심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속도가 이토록 더딘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의지가 없어서다. 빈곤층에게 재정을 투여하고 싶지 않은 속내와 기초생활보장제도 확대를 두려워하는 정책, 재정 결정자들의 행동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가로막는 핵심 원인은 아닌가.

 

모든 사람을 대표하겠다는 정치는 아무도 대표하지 않는 것이며, 전 국민의 가장 마지막에 변화하겠다는 청와대의 태도야말로 우리 사회 합의와 발전을 가로막는다. 사회적 합의의 뒤에 서서 자신들의 공약조차 외면하는 청와대는 변화를 가로막는 장본인이다.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위한 우리의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부양의무자 기준에 의해 빈곤에 덫에 갇힌 가난한 이들의 힘으로 부양의무자 기준은 폐지될 것이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beminor@beminor.com



 출처:비마이너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