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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임명에 떠들썩했던 한 달, 장애인은 소리소문없이 죽어갔다

松竹/김철이 2019. 9. 11. 10:50
조국 임명에 떠들썩했던 한 달, 장애인은 소리소문없이 죽어갔다
장애와 빈곤으로 인한 ‘사회적 타살’, 장애인들 희생자 추모하며 정부 규탄
추석 앞두고 서울역에서 합동추모제 열어… 장애인 복지 예산 확충 요구
등록일 [ 2019년09월10일 22시29분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10일 오후 5시, 서울역 대합실에서 ‘허울뿐인 장애인복지 희생자 합동분향소 설치 및 추석연휴 농성투쟁’ 기자회견을 열었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 허현덕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앞두고 사회가 떠들썩했던 한 달간, 장애인들은 굶어 죽고 혼자 죽고 가족에게 죽임당했다. 그 죽음은 빈곤과 긴밀히 닿아 있었다. 추석을 앞두고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이 정부에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며 서울역에 분향소를 차린 이유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10일 오후 5시, 서울역 대합실에서 허울뿐인 장애인복지로 인해 사망한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설치하고, 추석연휴을 맞아 1박 2일 농성 돌입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최근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도 보장받지 못하고 죽어간 장애인들의 소식이 연달아 보도됐다. 지난 8월 13일에는 관악구 탈북민 어머니와 여섯 살 난 장애아들이 굶어 죽은 지 두 달 만에 발견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됐다. 이어 8월 20일에는 관악구에 사는 50대 장애여성이 홀로 사망한 지 2주가 지나 발견됐다. 9월 1일에는 강서구에서 80대 노모와 50대 중증장애아들이 이들을 돌보던 또 다른 아들에게 살해되어 충격을 안겨주었다.

 

장애인들은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이 넓은 복지사각지대에서 ‘굶어 죽고, 혼자 죽고, 맞아 죽는’ 참극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며 “문재인정부는 포용국가라는 비전만 내세우지 말고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정책 예산부터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이를 위해 이들은 △개인맞춤형 3대 정책(장애인활동지원, 주간활동지원, 장애인연금) 2020년 예산 반영 △활동지원 24시간·주간활동 8시간 확보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와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 등을 요구안으로 내걸었다. 정부와 집권여당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올해 7월, 31년 만에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가 이뤄졌지만 장애인들에게는 그저 ‘장애등급’이 ‘장애정도’로만 명칭을 바꾼 것에 불과한 상황이다. 예산 확충이 이뤄지지 않아 정작 장애인들은 정책 변화를 실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장애인들은 “장애인복지 예산 확대 없는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는 가짜에 불과하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처음 장애등급제가 폐지된다고 했을 때, 이제는 더 이상 집구석과 시설에 처박혀 있지 않아도 될 줄 알았다”며 “문재인정부는 활동지원 24시간 보장한다더니 ‘잠자는 시간 8시간은 빼도 되지 않느냐’며 말을 바꾸고 있다. 그러나 우리 중증장애인들은 활동지원이 없을 때 어느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장애인 자립생활을 위해 반드시 장애인활동지원, 주간활동지원, 장애인연금에 대한 예산 확충이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장애등급제뿐 아니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공약도 지키지 않았다. 지난 5일, 복지부는 최근 잇따른 죽음에 대한 대책 발표로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2021~23년)에서 생계급여에서의 부양의무자 기준 단계적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2차 계획에서 생계급여, 의료급여의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전 폐지하겠다’고 공언했던 기존 입장에서 상당히 후퇴한 발상이다.

 

정성철 빈곤철폐를위한사회연대 상임활동가는 “강서구 살인사건도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발생했다. ‘간주부양비’로 고통을 받던 둘째 아들은 살인자가 되었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부양의무자 기준의 심각성을 알렸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10일 오후 5시, 서울역 대합실에서 ‘허울뿐인 장애인복지 희생자 합동분향소 설치 및 추석연휴 농성투쟁’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허현덕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정부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를 약속했던 2년 전과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규탄했다. 이 회장은 “광화문 농성장에서 5년간 수많은 영정사진을 놓고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외쳤는데, 우리는 이번 추석에 또다시 영정 앞에 모이게 됐다”며 “정부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선언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우리의 삶은 그 전보다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분노했다.

 

정부뿐 아니라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아래 더민주)도 비판을 면치 못했다. 지난 6월 더민주는 ‘맞춤형 장애인복지 추진 TF’를 꾸려 장애계와 간담회를 열었지만, 이후 간담회 결과에 따른 보고는 물론 다음 TF 간담회 일정도 계획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내년 장애인복지 예산안도 자연증가분에 그쳤다. 더민주가 꾸린 TF 자리가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를 앞두고 장애계를 달래기 위한 요식행위였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는 이유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은 “조국 장관을 임명하는데 한 달간 나라가 떠들썩했는데 우리 장애인들은 굶어 죽어도, 혼자 죽어도, 맞아 죽어도, 발견되지 않아도 이 사회는 무관심하다”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더민주는 지난 TF 간담회에서 장애인예산 올리겠다더니 전혀 성과도 없을뿐더러 간담회 결과조차 이야기해주지 않는다”며 “이런 오만방자한 권력들에 맞서 우리가 힘을 모아 동료들이 죽지 않도록 시설로 가지 않도록, 스스로의 힘으로 돌파하자”고 힘줘 말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이들은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설치하고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추모제를 열었다. 이어 1박 2일 노숙농성 후, 다음날인 11일 오전 서울역에서 이뤄질 이해찬 더민주 대표의 귀성 인사를 따라잡아 장애복지예산에 대한 사과와 대책 마련을 촉구할 계획이다.



허현덕 기자 hyundeok@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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