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수필

비 마중/잠시,뒤돌아 보며 제4집 한비문학회

松竹/김철이 2017. 10. 16. 15:58

    비 마중 

 이른 아침 당신이 오시는 발걸음 소리를 들었습니다. 숲속 풀잎을 토닥여 재우는 소리를, 마치 엄마가 갓난아기를 품에 안아 재우는 것처럼 당신 발걸음 좋아하는 이도 있고 싫어하는 이도 있지만 나는 당신의 발걸음 소리를 무척 사랑합니다. 세상 누구도 감히 흉내 내지 못할 큰 모정으로 세상 모든 생명을 무향 무표정 크게 지어 품어 안아 젖 물려 키우니까요. 때로는 베토벤을 능가하는 작곡가가 되어 세상사 힘겨워 지친 이들을 위해 세상 제일의 음악을 작곡하여 들려주셨고 또 때로는 고희동을 훨씬 능가하는 화가처럼 물감도 붓도 없이 세상 큰 도화지 위에 세상 최고의 그림을 그려 주시니까요. 그랬기에 당신을 맞이하는 세상은 한바탕 소란이 인답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오시는 당신은 옷 한 벌 멋지게 차려입고 대낮을 활보하던 중년 신사의 양복 위에도 뾰족구두 날씬한 아가씨 투피스 어깨 위에도 수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색실로 수를 놓았기 때문이지요.


 그뿐만 아니라 당신은 언제나 똑같은 소리로 어릴 적 많은 추억의 발자취를 남겨주셨죠. 갑작스레 내리는 당신은 궂은 개구쟁이처럼 준비 없이 아침을 나선 아이들 하굣길 바쁜 걸음을 뛰게 하셨고, 그도 모자라 한줄기 소나기로 애꿎은 호박잎 따서 머리에 쓰게 하셨죠. 그 옛날 좁다란 학교 길 빨강 우산 파란 우산 찢어진 우산이라는 아리따운 노래를 짓게 하셨고 기와집 처마 밑 미끄럼틀 삼아 타고 내려와 양철 양동이 두들겨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할 음률로 오선지 없는 노래를 지어주셨죠. 그랬었는데 지금은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존재로 변해있는 당신을 본답니다. 현대 과학 문명이 불러온 객 손도 아니련만 고속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것인지 중국 너른 땅 넓다. 않고 제멋대로 뛰놀던 황사 바람이 금수강산 날아와 때마침 찾아오시는 당신 이름에 먹칠을 했기 때문이지요.


 안 좋다 맞지 마라. 말도 많지만, 누가 뭐래도 당신이 좋아 지금도 마음을 가다듬어 당신 오시는 발걸음 소리 귀 기우려 당신을 맞이하렵니다. 비록, 오감을 지니지 못함에 오랜 세월 가슴속에 남아 울어줄 이 없으니 무뚝뚝한 땅 위에 내려 그 숱한 하소연 귀여겨듣기를 원하며 마시고 또 마셔도 갈증만 더해가는 황톳빛 흙 알갱이 헤집어 원의 역사를 기록하려 하나 정녕 마음을 열어 반겨주는 이 드므니 가슴은 미어지지만, 천명 따라서 생을 잇는 운명이라 한 점 자유의지는 없다 할지라도 값이 내려 겸손하게 아래로 흘러가는 미덕의 원천이기에… 이 몸은 먼 훗날 죽어 몇 점 흙 속에 묻히지 못한다 할지라도 가슴속에 심장이 뛰고 혈관 속에 피가 흐르는 순간만큼은 당신을 잊지 못해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이 세상엔 당신을 애타게 기다리며 그대의 존재를 확인하려 무지갯빛 고운 옷 차려입고 풍악 소리 더 높이 기원하는 이도 있겠지만, 쉴 새 없이 내리는 그대의 크신 자비와 사랑이 너무 부담스러워 당신을 피하고 싶어 외면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나 당신이 이 땅에 오시는 것은 천명이라 당신께서 하시는 발걸음은 세상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아주 큰 뜻이 내포되어 있으리라 생각되기에 나는 당신이 오시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그리워한답니다. 잘 살아 건 못 살아 건 이 땅의 한 백성으로 태어나 반 백 년이란 세월을 이미 살아버려 현재의 이 땅 위에 지천으로 늘려있는 소음과 매연의 극심한 성화에다 누구의 잘못인지도 모르고 또 다른 하늘의 큰 뜻이 있으셨는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더 맑은 영혼은 그것이 아닌데 꽈배기를 많이 먹어 그런지 뒤틀려 버린 육신은 당신이 오신다는 소문을 미리 알아차리고 물먹은 한 줌 솜이 되어 땅속으로 저며 들어 때로는 한숨의 숨조차 내쉬기 어려워도 나는 당신이 그리워 기다릴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땅의 사심 많은 뜻에 따라 살기가 싫어 하늘의 욕심 없는 뜻에 따라 사는 유일신을 섬기는 몸인지라 그 유일신이 방석으로 깔고 앉아계시는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당신을 더욱더 사랑하며 그리워합니다. 그런 마음에서 당신을 맞이하는 이 땅의 모든 이가 어떤 경우에도 당신의 발걸음이 저주가 아닌 축복과 자비라는 것을 진정 깨닫고 가슴속 깊이 새길 수 있도록 당신이 오시어 메마른 대지를 적시며 천명을 전하듯 시들어 가던 들녘의 파초(芭蕉)를 더욱 푸르게 생기 돋게 하듯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십사 두 손 모아 기원하는 심정으로 이 순간에도 창밖에 조용히 내리는 당신을 맞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