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를 찾아서
갈대나 버드나무 껍질로 만들어 불던 호드기 피리를 기억하는지? 이미 저만치 물러나 앉은 세월의 언저리에 서민들의 갖은 애환을 달래주었던 호드기 피리, 오래전 주로 서민들이 애환을 달래며 즐겨 불었던 호드기 피리 소리를 쇠퇴해져 가는 기억을 수습하여 떠올려 본다. 기억의 도마 위에 떠올려 놓기만 하여도 피리 소리가 애간장을 녹이듯 애잔하게 들려온다. 통째는 아주 작은 피리 같지만, 갈대로 만든 우리 서민들의 전통악기인 호드기 소리는 산천을 떠돈다. 호드기 피리는 어린아이들은 동요를 부르고 어른들은 삶의 애환을 담아 노래했던 풀피리다. 겨울철 갈대를 베어 쇠죽 통에다 콩깍지, 통겨, 쑥 뿌리 등을 넣어 여러 번 삶아 울림통을 만들며 울림통에 불에 달군 꼬챙이로 구멍을 뚫고 백여 차례 사포질로 태어나는 호드기 피리, 불과 길이 27cm, 울림통 지름 0.5mm 안팎의 몸체로 쉰둥이 이전 세대 아저씨, 아줌마들의 기억 속에 아련하게 남아 그들의 옛 추억을 되살리고 있다. 이 추억의 소리가 콘크리트 시대라 불리는 현대인들의 가슴에도 인간미 넘치는 소리가 되어 흘러넘쳤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국민의 갖가지 애환을 등짐을 진 채 몇십 년 동고동락했던 소리들을 챙겨 시멘트 문화 속에 삭막해져 가는 현대인들의 영혼 속에 사람의 정이 흐르는 강둑을 쌓고 싶어 민족의 소리를 나열해 본다. 얽힌 사연은 모르지만 오십여 년 전 매일 정오를 알리는 사이렌이 부산 시가지에 울려 퍼졌다. 사이렌이 울리면 악동들은 배꼽시계의 혜택으로 시장기를 느끼고 엄마의 옷소매를 이끌며 점심밥을 달라고 조르기 일쑤였다. 흙먼지 풀풀 날리는 골목 안에서 천방지축 뛰놀던 악동들이 졸라대던 배꼽시계를 달래려 집을 향해 급히 달려가느라 다 낡은 검정고무신이 벗겨질 듯 말 듯 덜거덕거리는 소리를 떠올리니 가슴속의 애잔한 사이렌 소리가 절로 울린다. 그 옛날 밤이 짙어진 거리에 눈먼 영혼이 불던 피리 소리가 동지섣달 칼바람이 살점을 파고들 듯 뼛속까지 파고 들었다. 더듬더듬 겨울 밤거리를 헤치며 “삐! 삐!” 칠흑 속에서 파랗게 일었던 맹인(시각장애인) 안마사 피리 소리가 뚫어진 창호지 틈새로 숨어든 황소바람에 코가 시려 깍지를 껴야 했으니 서민들 가슴은 먹먹했을 터, 가난했던 시절의 겨울은 이미 시작되었다. 태엽 풀린 괘종시계가 “뎅!” “뎅!” 열 시를 알린 후 잰걸음으로 자정을 향해 달려가는데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의 조바심을 더욱 부채질하였고 찢어진 창호지 속으로 저며 들던 겨울 칼바람은 전쟁에 패한 패잔병처럼 살점을 마구 헤집어 놓았다. 패전국의 잔해라도 되는 듯이 야밤을 더욱 깊은 암흑 속에 구속했던 통금 사이렌 소리는 시민의 일상생활을 한층 더 외롭게 하였다. 야밤을 지킨다는 핑계로 밤길을 누비던 야경꾼 딱딱이 소리는 도둑을 쫓는 것인지 좀도둑을 비호했던 것인지 야경꾼의 딱딱이 소리가 지나가고 나면 좀도둑의 손버릇은 더욱 기승을 부렸다.
“메밀묵 사려! 찹쌀떡!” 깊어가는 야밤을 동무 삼던 고학생들의 애소가 못 먹고 못 살던 시대를 살던 이들의 마음을 애인케 하였다. “뻔! 뻔! 번데기!”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호객행위에 철부지 아이들은 폐기 처분할 물건들을 들고 나왔으며 집안에 파지가 없는 아이들은 부모를 졸라 돈 한 푼 얻어 모여들었다. “뻥이요!” 라는 고함과 동시에 “펑!” 하는 괴성이 뒤따르고 행여 뻥튀기 건물 밖으로 무단가출한 박산 부스러기나 있을까 하여 장터를 서성이던 코흘리개 개구쟁이들의 행동에서 순박한 인간미를 맛보았다. “철커덩! 철커덩!” 하는 투박한 소리를 동반한 구성진 엿장수 목소리가 들릴 양이면 혹시라도 집안에 엿 바꿔먹을 고물이 없나 싶어 온통 집안을 북새통으로 만들던 아이들의 순박함은 어디서 느껴볼 수는 없을까? 여태 탐방한 소리는 분명히 서민적이고 이러한 소리를 지어낸 직업들 또한 아무리 가난했던 시절이라 하여도 선뜻 직업으로 택하기 꺼리는 일들이었으나 어느 계층의 의심도 받지 않고 대중 속에 쉽게 쟁여들 수 있는 일들이었다. 맹인(시각장애인) 안마사, 번데기 장수, 뻥튀기 장수, 엿장수 등은 일제강점기 왜경의 감시를 소홀히 따돌리고 독립군 정보원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고 하니 이들이 자아냈던 소리는 우리 민족의 소리라 하여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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