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발표작

연작 수필 2부작 김치 없이는 못 살아 제2화 우리나라 김치의 종류/(수필) 월간 한비문학

松竹/김철이 2016. 11. 15. 11:00

연작 수필 2부작/김치 없이는 못 살아

제2화 우리나라 김치의 종류

 

                                                                            김철이

 




 


 우리나라 생활풍습 중에 지방에 따라 매년 시월 말에서 십이월 중순에 걸쳐 반년 농사인 김장을 담그곤 했었는데 지금도 별 달리 변한 건 없지만, 그 시절 김장 때만 닥치면 가정마다 가정의 여주인들의 손길은 한층 더 분주해지는 것이 당연지사 배추와 무가 다섯 번을 죽어야 사람들 입속으로 들어갈 김치가 된다는 큰 가르침을 뒷받침하듯 주부들의 노동과 수고가 더해져야 했다는 것이다. 앞뒤 과정은 죄다 접어 없앤다 하더라도 김장 담그는 당일의 풍경만 상상해 보아도 그 시절 여인네들의 삶이 얼마나 힘겨웠는지 단편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 해 김장을 마치는 시간이면 “아이고! 다리야! 허리야! 아무개야! 엄마 어깨 좀 주물러라.” 라는 엄마들의 하소연이 담장을 쉽게 넘었다는 것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라는 단어가 요사이 나온 것이 아니라 그 시절 훨씬 이전부터 사람들 입을 오르내렸다는 것이다. 품앗이라는 용어가 굳이 시골에서만 해당하였던 것이 아니라 인심 좋았던 그 시절 도회지에서도 이 단어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풍경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는데 특히 그 시절 내가 살았던 그 동네 아낙들의 단합심은 다른 도시나 시골에서도 보기 드물 정도였다. 어느 한 가정에 어떤 가정행사가 있을 양이면 그 가정 바깥주인보다 다른 가정들의 안주인들이 먼저 알고 있으며 죄다 마음을 모아 그 행사를 추진 처리해 나아갔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개똥이네 아버지는 살림살이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아내가 임신한 것조차 모르고 있다가 열 달 뒤 이웃 아낙들이 산부인과 의사, 간호사, 산파 역할을 자청하여 아내가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출산하고 나니 저녁에 귀가하여 하는 말이 “니, 언제 아 가졌더나?” 하더라는 것이었다. 이 일은 조금은 과장되었겠지만, 결코 개그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인다면 지금 이 시대의 아내들에게 그런 푸대접을 했다간 이혼사유로 충분하니 당장 이혼소송에 들어갈 것이고 그런 남편은 여성단체의 지탄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 시절 내가 살던 그 동네 아낙들은 죄다 철도원 가족들로 구성돼 있었으므로 단합심은 엄청난 힘을 과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단합심은 매년 김장 때만 되면 어김없이 발휘되곤 했었다. 김장 때가 되면 이집저집 번갈아가며 동네 아낙들이 일손을 모아 김치를 버무려 넣곤 했었는데 한 해 우리 집 김장 때였다. 항상 김장을 마치고 나면 쌓인 피로를 풀 겸 막걸리 파티를 열었었는데 그날따라 한 아주머니가 버무른 김치를 독에 넣다 말고 목마르다고 한 잔, 김치 간을 보다가 짜다고 이래서 한 잔 저래서 한 잔 하다 보니 취기가 얼큰하게 올랐고 김장 중요성에 대한 개념이 흐려지니 독에 김치를 넣으며 김치에다 소금 떡을 쳐서 넣는 것이 아닌가! 이를 말리다 지친 어머니, “아이고야! 올해 우리 김장 다 망쳤데이” “저래가 짭아서 저 김치 어째 다 묵노” “이놈의 여편네 우리 반년 농사 망치기만 해보래이 너거 독에 김치 다 퍼 올거 데이” “문디야! 내 덕에 올 김치 억수로 맛있을 거 데이 두고 보래이” 경상도 아낙들의 억센 말투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그 시절 김치의 존재가 얼마나 큰 수치로 서민층 살림살이에 다가왔고 매년 거듭되는 김장을 왜 소중히 여겨야 했는지…

 

 그 당시 김치가 얼마나 귀한 존재였나를 단편적으로 본다면 반년 농사라 말할 수 있는 김장을 하여 요즘처럼 일반 냉장고는 물론 김치냉장고는 꿈도 꾸지 못했던 시절이니 땅을 파고 땅속에 묻어놓고 해동이 될 때까지 끼니때마다 꺼내먹곤 했었다. 같은 연산동이긴 하지만, 어릴 적 내가 살았던 동네와 조금 먼 거리의 이웃에 서민층이 많았던 부산 사 부두에서 집단으로 이주해 와서 살았던 이주민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손버릇이 곱지 못하다는 것은 익히 잘 알던 사실이었으나 밤잠도 자지 않고 밤새 김치를 지킬 수도 없는 일, 아침밥을 지어놓고 뒷마당에 묻어놓은 김장 김치를 꺼내려 갔던 아낙들이 없어진 김치를 보고 놀라는 일들은 허다한 일이었다. 남의 것을 훔치고 싶어 훔쳤겠는가! 그들도 돈 없고 배가 고프니 산목숨 생으로 끈을 수 없으니 남의 것이라도 훔쳐 먹고살아야겠지만, 반년 농사를 지어놓은 사람들은 어떡하란 말인지. 그때 그 시절 잃어버렸던 것이 어찌 김치뿐이었겠는가! 고추장, 된장이 주인들 허락도 없이 타인들의 손에 의해 담을 넘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되어버린 지 오래된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만큼 김치의 그 종류도 많고 지방별로 입맛에 맞게 담가 먹는 김치의 종류도 많은데 지방에 따라 분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함경도: 생선이 많이 나는 곳이라 김치에도 생태·굴 등을 넣어 시원한 맛을 내며, 콩나물김치·쑥갓김치·함경도 대구깍두기·채칼김치 등이 있다. 황해도: 간이 짜지도 싱겁지도 않으며, 맑고 시원하여 충청도 음식과 비슷하다. 동치미·호박김치·갓김치·고수김치 등이 있다. 평안도: 양념이 간단하고 소금으로 간을 맞추며 육수를 사용해서 단맛을 낸다. 가지김치·영변김장김치 등이 있다. 경기도: 재료가 다양하고 먹음직한 꾸밈새가 특징이며, 용인 오이지·순무 짠지·꿩김치·숙김치·보쌈김치·무 섞박지·무비늘김치·백김치 등이 있다. 서울 지방: 조선 시대 궁중에서부터 발달하였다고 하는 궁중 김치인 고춧잎 깍두기·오이소박이·장김치 등이 유명했으나, 전국 각 지방의 김치가 두루 섞여 독특성이 사라지고 있다. 충청도: 젓국 대신 소금으로 간을 맞추는 경우가 많으며, 박김치·파짠지·가지김치·새우젓 깍두기 등이 있다. 강원도: 저장기간이 오래가도록 만든 것이 특징이고, 창난젓 깍두기·채김치·동치미 등이 있다. 전라도: 조기젓·밴댕이젓·병어젓 등 젓국의 종류가 다양하며 향신료를 많이 쓴다. 갓 쌈김치·고들빼기김치·배추 포기김치·검들김치 등이 있다. 경상도: 멸치젓을 주로 사용하며 소금 간을 세게 하여 발효가 더디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전복김치·속새김치·콩잎김치·우엉김치·부추김치 등이 있다. 제주도 해산물이 풍부하여 전복김치·해물김치를 비롯한 나박김치·동지김치 등이 있다.

 숱한 세월 우리 민족의 세 끼니 밥상머리 주도적 역할을 능히 수행하며 우리 민족과 함께 동고동락해 왔던 김치가 이 시대에 와서는 수입 개방 탓에 국외 농수산물들이 홍수처럼 싼값으로 마구 밀려드는 통에 김치의 주재료인 국산 무 배추가 뒷방 늙은이 신세로 전락해 버린 이 시점에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까지 외면과 천대를 당하는 실정이니 김치의 운명이 장차 어떻게 전계되 나아갈는지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못내 슬플 따름이다. 수많은 종류의 김치중 아내가 담그는 김치는 어디에 해당하는지 몰라도 아내가 밤잠을 설처가며 전날 오후부터 김장을 담그느라 부단히 애를 쓴다는 점이 무척 안쓰러웠다. 우리 집에선 평상시 한 번씩 김치를 담글 양이면 두 식구에 걸맞지 않게 많은 양의 김치를 담근다. 하나밖에 없는 누이동생이 늘 몸이 불편한 탓에 아내가 우리 집에서 김장 김치를 담가 함께 나눠 먹곤 하는데 적지 않은 양의 무, 배추를 골라 사 와서는 다듬고 소금물을 녹여 배추를 절이는가 하면 행여나 짤까 혹시나 싱거울까 밤잠을 설처가며 애쓰는 아내가 안쓰러웠지만, 나로선 도울 방법이 없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