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고 싶다

[자전거를 탄 식객들의 한반도 자전거일주] “워메, 목포라? 자전거로는 징하게 먼디"

松竹/김철이 2011. 8. 10. 14:33

[자전거를 탄 식객들의 한반도 자전거일주] “워메, 목포라? 자전거로는 징하게 먼디"

 

글·사진 송철웅 아웃도어칼럼니스트

 

 

 

모기와 더위와 싸우며 증도~지도~목포~해남 길 달려
▲ 신안군 증도를 떠나 목포로 향하는 길에 청계삼거리를 통과 중인 일행들. 이정표에 나타난 1번국도는 목포에서 신의주를 연결하는 대한민국 제1호 국도이다.

새벽 3시. 여기는 전남 신안군 증도 우전해변이다. 우리는 해변 잔디밭에서 침낭을 뒤집어쓰고 각자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전쟁 상대는 바다 모기. 해변지역에 서식하는 바다 모기는 내륙의 동료들보다 공격적이고 셔츠나 바지 따위쯤은 쉽게 뚫고 주둥이를 박아 넣는 모진 놈들이다. 


놈들은 침낭 밖으로 노출된 얼굴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공습 예고와도 같은 앵~ 하는 비행음이 멈추는가 싶으면 여지없이 따끔한 통증이 이어진다.


집단가출 자전거 전국일주 제10차 투어를 위해 전날 저녁 9시에 서울을 떠나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함평, 무안을 거쳐 무려 7시간의 운전 끝에 비박지에 도착한 우리는 날이 새면 시작될 빡센 라이딩에 대비해 1초라도 빨리 잠들고 싶었으나 모기들 입장에서는 우리의 도착이 혈액 파티의 시작이었다.


침낭 커버의 지퍼를 완전히 닫으면 덥고 숨쉬기도 불편했지만 이마와 귀를 몇 방 물리고 나서는 어쩔 수 없이 지퍼를 올리고 말았다. 모기를 한 마리도 척살하지 못하고 오로지 당하기만 하니, 이쯤 되면 전쟁이라기보다는 농성(籠城)에 가깝다. 지난해 9월 강화도에서 첫 전국일주 페달링을 시작한 이래 가을, 겨울, 봄을 지나 이제 본격적인 여름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모기들은 무자비하고도 극성스런 방법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슬로시티 증도와 한국 최대 염전
밤새 모기와 싸우느라 잠을 설쳐 입이 깔깔했으나 자전거를 타려면 입맛이 없어도 밥을 먹어둬야 한다. 신안에서 염전을 경영하고 있는 청년 소금농사꾼 김성종씨의 안내를 받아 증도면사무소 부근의 안성식당을 찾았다. 메뉴는 요즘 한창 제철인 병어조림. 보통 비린 음식은 아침 식사로 적당하지 않다고 막연하게 가졌던 선입견은 호박과 감자, 양파를 깔고 그 위에 병어를 올린 뒤 고춧가루와 마늘로 만든 양념간장을 자작하게 부어 끓인 병어조림 앞에서 깨졌다. 잠이 모자라 입맛이 없는 와중에서도 모두들 그릇을 깨끗이 비워 낸다.


신안군 증도는 슬로시티국제연맹이 지정한 대한민국 공식 슬로시티(Slow City)다. 슬로시티운동은 1999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국제적 NGO 활동. 운동의 공식 명칭은 치타슬로(Cittaslow)로 슬로시티국제연맹은 인구 5만 이하의 도시 중 자연생태계, 주민들의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 등을 기준으로 슬로시티를 지정하는데 선정 조건 중에는 유기농법에 의한 지역 특산물이 있어야 하며 대형 마트나 패스트푸드점이 없어야 한다는 것도 있다.


현재 약 20개 국에 120여 개의 슬로시티가 지정되어 있으며 4년마다 재심을 받아 타이틀 유지 여부를 결정하는데 국내에는 신안군을 포함, 전남 담양, 장흥, 완도군 등 호남 4군이 선정된 후 재작년 경남 하동군이 대열에 합류, 총 5개의 슬로시티가 있다.


관광대국임을 자처하는 일본은 농촌이 지나치게 현대화·서구화돼 있는 탓에 수차례의 도전에도 고배를 마셨고, 중국도 아직까지 슬로시티가 한 곳도 없는 가운데 최근 60개 도시를 ‘만성(晩城)’으로 지정해 슬로시티 가입을 준비하고 있다.


▲ 독특한 염전 풍경의 한축을 이루고 있는 소금 창고 앞에서 잠시 라이딩을 쉬고 있는 집단가출 전국일주팀. 목재로 만들어진 소금창고는 염분 덕분에 잘 썩지 않아 오랜 세월을 견딘다.

전남 신안군이 슬로시티가 된 것은 세계 최고품질의 천일염의 집산지, 증도 덕분이다. 특히 증도의 태평염전은 국내 최대 규모 염전이자, 그 자체로 문화재. 바닷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얻어내는 지난한 소금작업 자체가 신안 슬로시티의 상징인 것이다.


그동안 해안코스를 1,500km 가까이 달려오며 곳곳에서 염전을 만났지만 신안의 염전은 규모면에서 단연 국내 최고다. 마치 모내기하기 전의 논처럼 보이는 소금밭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고 소금밭을 따라 일렬로 늘어선 소금창고가 장관이다. 특히 증도와 사옥도는 사방 눈길 닿는 곳 어디나 염전이었고 우리의 자전거 행렬은 염전을 따라 이어졌다.


신안 소금의 품질은 세계적으로 톱클래스인데 그 비밀은 신안 청정해역의 깨끗한 바닷물과 갯벌에 함유된 풍부한 무기질이다. 증도, 사옥도, 지도 3개 섬을 이어 무안으로 이어지는 섬길은 길고 길어서 평균 시속 15km의 자전거는 해가 높이 뜰 때까지도 섬을 벗어나지 못했다.


양파 수확하는 게 자전거 타기보다 더 힘들어
마지막 섬 지도에서는 마침 읍사무소 부근에 선 5일장을 만났다. 왁자지껄 시장 골목으로 들어서자 고소한 냄새가 침샘을 자극하며 발길을 붙잡는다. 노점 튀김집에서 퍼져 나오는 튀김 냄새.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전거를 눕혀두고 달려가 앞다퉈 오징어튀김과 찹쌀도너츠를 집어먹는데 이제 막 기름솥에서 건져 올린 바삭하고 부드러운 튀김 맛은 아침 일찍부터 20여km를 쉼 없이 달리느라 출출해진 입에 착착 감긴다.


“오늘 목포까지 가야 하는데 빠르면서도 차가 덜 다니는 한적한 길이 어딜까요?”


사실 빠른 길과 한적한 길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모순관계라는 점을 잘 알지만 일단 사람을 만나면 길부터 물어보는 것이 버릇이 되어 있는지라 오징어 튀김을 씹으며 튀김집 아저씨한테 물어봤다.


“워메, 목포라? 자전거로는 징하게 먼디. 현경에서 무조건 우회전하씨요. 그래가꼬 망운에서 무안공항 옆으로 해서 청계를 지나서 쪼~옥 가면 거그가 목포요.”


아이패드 위성지도를 놓고 설명을 듣자 나아갈 길이 명확해진다. 튀김집 아저씨가 가르쳐준 길은 위험한 고속화도로를 타지 않고도 목포까지 최단거리로 갈 수 있는 국도와 마을 뒷길을 절묘하게 이은 코스였다.

 

 

 

 

▲ 1 무안의 양파밭. 빨간색으로 보이는 것이 양파를 담은 20kg들이 자루다. 양파 농사도 품이 많이 들지만 수확한 양파를 담는 작업도 만만찮다. 2 양파 담기 자원봉사에 나선 허영만 화백. 일하는 아주머니들은 며칠째 단체로 버스를 타고 양파밭을 전전하고 있던 터여서 집단가출팀이 내민 도움의 손길을 사양 않고 받아들였다. 우리는 이 작업의 대가로 가장 큰 양파 한 알씩을 받았다.

증도와 사옥도가 소금의 섬이었다면 신안군의 육지 쪽 마지막 섬인 지도는 양파의 섬이다. 높은 산이 없이 섬 전체가 부드러운 지형의 구릉지대인데 지도를 관통하는 24번국도변이 끝없이 양파밭이다.


양파밭은 멀리서 척 봐도 알 수 있는 게, 밭이 온통 빨간색이다. 양파 수확기여서 밭마다 양파를 나일론 망에 담아뒀는데 그 망이 빨간색이어서 밭 전체가 빨갛게 보이기 때문이다.


양파 담는 작업이 한창인 곳을 지나는데 앞서가던 허영만 대장이 슬그머니 자전거를 멈춘다.


“우리도 밥값을 좀 하자.”


밥 먹기 전에 양파 담는 작업을 도와주자는 얘기다. 양파밭으로 뛰어들자 작업 중이던 아주머니들의 눈이 동그래졌는데 도와드리겠다고 말씀드리자 안 그래도 힘들었는지 모두들 환호하며 반색을 한다.


길이 100m가 넘는 밭고랑에 캐놓은 양파가 고랑을 따라 수북한데 20kg들이 망에 상처 나거나 썩은 것, 또 너무 작아 상품성이 떨어지는 놈들을 빼고 담는 것이 작업의 내용. 엉거주춤한 자세로 망 세 개 쯤을 채우자 허리가 아파 견딜 수 없다.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라면 타겠는데 이건 못 하겠는데요?”


인내심 부족한 젊은 축들은 시간이 갈수록 질려 어쩔 줄 모르는데 집단가출 자전거일주팀의 최연장자인 허영만 대장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니, 아주머니들은 며칠째 하루 종일 하신다는데 고작 그거 담고 항복하려고? 안 돼! 이제부터 천 개 담고 허리 한 번 펴기다.”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지난 뒤 “이래서는 오늘 안에 목포 못 간다”는 푸념이 나오자 허 대장은 그제서야 아쉬운 듯 손을 털고 일어섰다.


지난 겨울 충남 서산지역을 지날 때 고생스럽게 굴을 따는 할머니들을 만난 이후 어디서건 굴을 먹을 적마다 그 할머니들이 생각나곤 하는데, 이제부터는 양파를 먹을 때마다 양파 캐고 담던 아주머니들의 싸리비처럼 거칠고 마디 굵은 손이 생각날 것이다.


봄에 이 언덕이 푸르렀을 때는 또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목포에 진입한 것은 오후 6시. 여기서 다시 유달산 일주도로를 한 시간 가까이 더 달려 비박지인 목포항 삼학마리나에 도착하자 자전거의 태코미터에는 에누리 없이 90km의 주행거리가 찍혔다.


이튿날은 오전 6시 기상, 6시 30분 출발. 낮엔 볕이 워낙 뜨거운지라 기온이 오르기 전에 거리를 벌어두고자 일찌감치 서둘러 해남을 향한다. 삼호대교를 통해 영산강을 건넌 뒤 대불산업단지를 관통하고 영암호의 둑방길 금호방조제를 단숨에 넘어 해남땅에 들어섰을 때 태양은 또 다시 높게 떠 아스팔트 도로를 달군다.


806번지방도로를 통해 진입한 해남은 구릉이 발달한 지형이 무척이나 이국적이다. 그 흔한 산 하나 없이 굼실굼실 펼쳐진 구릉과 드넓은 평야가 우선 시각적으로 시원스럽다. 게다가 도시와는 달리 아파트는 물론, 시야를 가리는 2층 건물조차 없이 야트막한 농가주택들이 전부여서 어느 방향으로 눈을 돌려도 정답고 순한 풍경이 펼쳐지는데 우리의 자전거는 그 풍경 사이로 빨려 들어간다.


▲ 1 무안이 양파 수확으로 분주한 것처럼 해남은 밀과 보리를 수확하느라 콤바인이 부지런히 밭을 누비고 있었다. 사진 속의 밭에 심어진 작물은 밀이다. 2 여름철 뙤약볕 아래 장거리 자전거 라이딩은 사막을 횡단하는 대상과도 같다. 한 방울의 물도 나눠 마실 수 밖에. 준비해간 1.5리터 물통이 바닥나자 여분의 배낭형 물주머니를 가진 김경민이 멤버들에게 차례로 물을 나눠주고 있다. 3 밀과 보리는 줄기는 물론 알곡까지 비슷해서 언뜻 봐서는 구별이되지 않았다. 어린 시절 밀농사 보리농사를 가까이서 지켜봤던 허영만 화백이 두 곡식의 차이점을 설명하고 있다.

산이면에 들어서면서 더욱 독특한 파노라마가 연출됐는데 그 파노라마의 주인공은 밀밭과 보리밭이었다. 언덕의 부드러운 스카이라인을 따라 추수철을 맞은 밀과 보리가 바람이 불 때마다 물결처럼 일렁여서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이 마치 잔잔한 금빛 바다를 헤쳐 나가는 듯하다. 아! 봄에 이 언덕이 푸르렀을 때, 그 때는 또 얼마나 더 아름다웠을까?


진산리에서 콤바인으로 밀을 베어들이고 있는 농부를 만났다. 농부의 설명에 따르면 밀과 보리는 가을에 벼를 추수하고 난 뒤 파종되는데 언 땅에서 겨울을 이기고 이듬해 6월, 병충해가 시작되기 전에 수확한다. 때문에 밀농사, 보리농사는 제초제나 농약을 뿌릴 필요가 없는 진정한 의미의 친환경, 무공해 작물. 그러나 현실은 국내 밀 수요의 99.7%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 0.3%의 자급률을 3%로 끌어올리는 것이 우리 농촌의 1차 목표라는 농부의 설명이 왠지 쓸쓸하다.


언덕과 언덕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진 해남길은 자전거 변속기를 조작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유순하게 흘렀지만 바람 없는 6월 한낮의 태양이 작열하면서 우리는 시나브로 지쳐갔다. 각자 준비한 1리터들이 물통이 바닥나 근처 방앗간에서 물통을 다시 채웠으나 그마저 오전 11시가 되기 전에 다 마셔버렸다.


남도의 땡볕은 땀이 피부로 흘러내릴 여유도 허용치 않고 즉시 증발시켜버릴 만큼 혹독해, 해남길을 자전거로 달리는 것은 마치 사막을 횡단하는 것 같았다. 온몸의 물기가 다 빠져나갈 것 같은 시점에 때맞춰 금송리에서 홍석민, 김은광 지원조와 만났다.
지원조의 손에 들린 커다란 수박을 보는 순간 모두들 자전거를 집어던지고 모여든다.


힘든 여정을 이어가다 보면 자주 행복이 멀리 있지 않음을 깨닫곤 한다. 나무 그늘에서 수통의 물을 벌컥벌컥 마실 때, 구멍가게에서 ‘아이스케키’를 사먹을 때 우리는 아이들처럼 행복해하곤 했는데 이날 마을회관 앞에 퍼질러 앉아 수박을 쪼개먹으며 느낀 행복감은 덥고 갈증이 극심했던 만큼 여느 때보다 농도가 짙었다.


지도를 살펴보니 이제 해남 땅끝이 코앞이다. 지금까지는 서해안을 따라 줄곧 남으로, 남으로 달려왔으나 남해가 시작되는 땅끝부터는 부산을 겨누고 동쪽으로 달리게 된다.
강화도에서 시작된 서해안 코스의 총 누적 라이딩거리는 1,125km로 나타났다. 자동차 도로로는 400km 남짓인데 자전거로 산을 넘고, 갯벌을 횡단하고, 해안백사장을 달리며 복잡한 해안선을 따라 구불구불 코스를 이어간 탓에 거의 3배 가까운 거리를 달린 것이다.


우리 앞에 펼쳐진 남해안은 강진만, 보성만(득량만), 여자만, 진해만 등 만(灣)이 즐비해 해안선이 들쭉날쭉하니, 서해안 못지않은 거리를 달려야 주파할 수 있을 터. 어쩌다보니 하필 가장 뜨거운 시기에 ‘뜨거운 남도’를 통과하게 됐다. 다음달 투어부터는 바이크 캠핑 중 모기 공격을 막을 대책과 함께 물을 많이 준비해야 할 것 같다.


 

 

 

출처: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