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손거울

사랑에도 건망증이 필요하다

松竹/김철이 2011. 4. 30. 08:26

사랑에도 건망증이 필요하다


산길을 걷는데 여기저기서 톡톡 떨어지는 소리가 납니다.
경쾌하게 톡 떨어지는 것은 도토리나 상수리일 테고
투박하게 툭 떨어지는 것은 아마도 밤송이일 겁니다.

톡 하니 떨어지는 소리가 날 때마다
조르르 스쳐 지나가는 다람쥐도 보입니다.
동그란 눈망울을 빛내며
세상의 모든 꿀밤은 다 내 꺼라고 외치는 것 같습니다.

도토리도 내 꺼, 상수리도 내 꺼…라는 듯
똘망똘망 사라지는 뒷모습이 참 귀엽습니다.
이미 땅속 깊이 보물 창고도 마련해 두었을 테고
겨우내 먹을 양식을 모아 쌓으며 부지런을 떠는 거겠지요.
그 조그만 다람쥐가 도토리 열두 개쯤을
양 볼을 주머니 삼아 챙겨 넣을 수 있다고 하니 참 기특하지요?

꿀밤나무숲 어딘가에 몰래몰래 먹이 창고를 파 놓고는
누군가 창고를 찾아내 겨울 양식을 송두리째 가져가지 못하도록
한 군데 다 모아두지 않고 여기저기 숨겨둔다고 하는데요.
요리조리 숨겨둔 밤이나 도토리를 정작 다람쥐 자신이
깜빡 잊고 찾아내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합니다.

다람쥐의 귀여운 건망증 덕분에
땅 속 깊이 숨겨져 있던 알밤이나 도토리가
다음 해 봄까지 그대로 남게 되면 포르르 싹이 터서
미래의 밤나무도 되고 도토리나무가 되기도 한답니다.

다람쥐의 건망증 덕분에 생겨날 꿀밤나무숲을 생각하면
사랑에도 건망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베풀고 난 후에 거두어들이지 않고 그냥 둔 사랑이
때로 울창한 꿀밤나무숲이 될 수도 있고
푸르른 도토리나무숲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내가 너를 사랑했다. 내가 너에게 이만큼 사랑을 주었다.
그러니 너도 그만큼의 사랑을 나에게 돌려 달라.'
그리하여 내가 건넨 모든 사랑을 다시 돌려받는다면
달콤한 꿀밤나무숲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겠지요?

조르르 달아나는 다람쥐의 귀여운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가끔은 잊고 그리하여 돌려받지 않은 사랑이
더 큰 숲이 되어 나에게 넉넉한 그늘을 드리우는 것…
그것이 진짜 사랑이라는 생각을 하며 혼자 중얼거립니다.

사랑은 주는 것.
주고 마는 것….
때로는 주었다는 것조차 하얗게 잊어버리는 것.

- 노은 '좋은 생각'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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