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 ▲ 일러스트 양혜원
〈고향의 봄〉은 1926년에 방정환이 펴낸 잡지 《어린이》가 실시한 현상공모에 당선한 동시다. 〈고향의 봄〉은 우리에게 〈아리랑〉이나 〈애국가〉 못지않게 각별한 뜻이 담긴 시이다. 노래로 더 친숙한 이 작품은 한국인이 집단무의식에 새긴 원체험이자 남과 북, 해외의 동포 대부분이 외우고 있는 동시다. 이번 연재를 위해 문인 선정위원들이 추천한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고향의 봄〉을 부를 때 감성의 저 깊은 곳에 숨은 마음의 금(琴)은 서러움에 떨며 운다. 언젠가 돌아가 몸을 눕혀야 할 '고향의 봄'은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실낙원의 봄'이 되어버린 까닭이다.
이원수(1911~1981)는 경상남도 양산에서 태어나 마산공립보통학교를 나왔다. 1930년에 마산상업고등학교를 마치고 함안금융조합에 다녔는데, 1935년에 독서회 사건에 연루되어 1년여간 옥살이를 하고, 이태 뒤에 함안금융조합에 복직해서 해방될 때까지 근무했다. 해방 뒤에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경기공업고등학교에서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많은 동시와 동화를 썼다.
〈고향의 봄〉은 떠나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시다. 그리움은 대상의 부재가 발효시킨 정서이다. 떠나온 고향은 두 겹에서 결핍을 드러낸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가 피는 정든 땅을 떠나며 고향과 이별할 때, "그 속에서 놀던" 순진무구한 어린 시절의 기쁨도 함께 잃는다. 고향을 잃으면 보람은 줄고 생의 기획들은 덧없어진다. 그리움은 상실이 빚은 병이다. 대상의 없음을 끌어안고 피어나는 다정한 질병. 그래서 고향을 잃으면 번민은 늘고 행복은 아스라한 꿈으로 멀어진다.
태를 묻은 고토(故土)이고, 혈연과 친지들이 공동체를 이뤄 사는 자리가 고향이다. 타향이 무서운 법과 정확한 계측과 차가운 논리가 지배하는 곳이라면, 고향은 결속과 믿음과 나눔으로 충만한 장소이다. 타향에서는 경쟁·차용·착취·절도·사기 따위가 일상다반사로 일어나지만 고향에서는 드문 일이다. 모든 기억은 망각을 위해서 존재한다. 그러나 고향에 대한 기억은 세월이 흘러도 밀랍에 찍힌 도장같이 선명하다. 고향의 기억은 작은 보람과 기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가난마저도 풍요롭게 윤색된다. 불행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행복한 기억은 새록새록 갱신되는 게 고향에 대한 기억이다.
개항 이후 한국인 대부분은 고향 상실자로 살았다. 일제 강점기에는 북간도, 만주, 하바로프스크, 블라디보스토크, 더 멀리는 하와이, 브라질까지 흘러갔다. 유랑의 길은 멀고 고달팠다. 필자는 세 해 전 쿠바의 아바나에서 한 세기 전에 고향을 떠나 그곳으로 흘러온 늙은 동포를 만나 가슴이 뜨거워진 적이 있다. 떠난 자에게 고향은 늘 멀다. 멀리 있어서 마음에 푸른 멍울이 맺힌다. 떠나온 길이 멀면 돌아갈 길도 멀다. 고향으로 가는 길이 가장 먼 길인 것은 그 때문이다.
더 이상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은 불어오지 않고,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는 지도에서 찾을 수 없다. 고향은 마음의 홀로그램에만 남는다. 고향에 대한 기억은 용량이 큰 '백업메모리'다. 그 기억은 아무리 인출해서 써도 마르지 않는다. 타향에서 거둔 성공과 번성은 우아한 퇴행에 지나지 않는다. 고향에서 멀리 나간 사람일수록 '고향의 봄'은 그 간절함으로 사무치고, 목청의 울혈은 쉬이 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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