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편 콩, 너는 죽었다
어린 아이 마음을 닮은 '섬진강 시인'
콩타작을 하였다
콩들이 마당으로 콩콩 뛰어나와
또르르또르르 굴러간다
콩 잡아라 콩 잡아라
굴러가는 저 콩 잡아라
콩 잡으러 가는데
어, 어, 저 콩 좀 봐라
구멍으로 쏙 들어가네
콩, 너는 죽었다 (1998)
- ▲ 일러스트=윤중태
사실, 그의 시는 이미 동시의 세계와 별로 구분되지 않는 어떤 영역 속으로 들어간 지 오래다. 소설가 이병천의 지적처럼 추사 선생이 완성의 경지에 이르러 동자체(童子體) 글씨를 선보이게 된 과정과 비슷하다고 할까. 동서고금의 숱한 대가들이 걸어갔던 그 경지를 우리는 탈속이라 부른다.
"감꽃 피면 감꽃 냄새/ 밤꽃 피면 밤꽃 냄새/ 누가 누가 방귀 뀌었나/ 방귀 냄새"(〈우리교실〉) 같은 시나 "병태 발가락이/ 양말을 뚫고 쏘옥 나왔네/ 어, 추워/ 어, 추워/ 병태 엄지발가락이/ 꼼지락꼼지락 양말 속을 찾지만/ 병태 발가락/ 들어갈 곳이 없네"(〈병태양말〉) 같은 구절들을 보라. 이 시들은 순진하면서도 원숙하고, 소박하면서도 현란하다. 이 시들 속에 삶이, 희망이, 슬픔이, 그 모든 파토스가 다 들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굳이 동시와 어른시를 구분하는 것조차 무의미하게 여겨진다.
콩타작 마당에서 벌어진 일을 어린 아이의 시점에서 서술하고 있는 이 시도 마찬가지다. 별 것 아닌 농촌의 일상을 한바탕 축제로 승화시키는 아이들의 삶에 대한 낙관, 그 활력에 가득 찬 명랑성은 이 시를 돋보이게 하는 주요 요소다. 콩은 '콩콩' 뛰어나와서 '또르르또르르' 굴러가고 그 콩을 잡으러 달려가는 시골 아이들의 목소리는 와글와글 시끌시끌 '어, 어' 낭자하다. 그러다가 쥐구멍으로 쏙 들어가는 콩, 더 이상 잡아올 수 없는 콩의 '안전한' 피신과 함께 사건은 갑자기 올 스톱! 되고, 이 느닷없는 정지화면 앞에서 한 아이가 내뱉는다. 흥, (쥐구멍에 들어갔으니), 콩, 너는 죽었다!
김용택의 동시들은 시의 궁극이란 무릇 어린아이의 무심에 가깝다는 것을 불현듯 상기시킨다. 그것은 "무지무지 심심합니다/ 하도 심심해서/ 강가에 가보면/ 강물만 멀리멀리 흐르고/ 텃밭에 가보면/ 도라지꽃만 피어 있습니다"(〈심심한 하루〉)라고 할 때의 그 '심심함'과 닮아있는 듯도 하다.
'산다는 것은…', 그 다음에 무슨 말을 덧붙이랴. 그의 시는 이 침묵에 속한다. 올해로 환갑에 이른 1948년생 '건국동이'의 시적 혜안이 소중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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