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과 속
신학교 시절 나는 거룩하게 되고 싶었다.
하느님을 온통 차지하고 싶었다.
간절한 기도와 규칙에 충실한 생활이 거룩하게 살아가는 길이라 믿었다.
아침에는 누구보다도 먼저 성당에 가 묵상을 하였고
저녁에는 가장 늦게까지 경당에서 기도하였다.
침묵시간에 소곤거리는 친구들을 남모르게 경멸하였고
정해진 규칙을 대수롭지 않게 어기는 친구들을 멀리하고자 하였다.
마음속에 미움과 질시가 가득했지만 친절하고 온유하게 보이고자 애썼고
늘 심각한 표정으로 생활하였다.
친구들은 나를 은근히 비꼬며‘쌍뚜스’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그러나 내 노력은 얼마 가지 못하였고 한 학기가 지나기도 전에
거룩한 체하며 살았던 것을 포기했다.
거룩함은 어떤 행동과 말을 하는지 겉으로 보여주는 데
달려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없는 것을 있는 체한다고 해서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하느님 나라는 외적인 조건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한다 하더라도, 아무리 봉사활동으로 하루를
보낸다 하더라도 그 나름대로 의미는 있겠지만 그것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자유이용권이 될 수는 없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하느님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외적인 행동은 내 마음을 살찌우는 방법이자 표현일 뿐이지
그 자체가 본질은 아닌 것이다.
기도하고 봉사하는 내 삶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잊고
겉치레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오늘 하루 다시 반성한다.
- 이정호 신부(구속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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