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 발자취

월간 한비문학 수필부문 "청포도" 신인문학상(2008년 5월호)

松竹/김철이 2008. 5. 7. 18:37

월간 한비문학 수필부문 신인문학상(2008년 5월호)


♧ 김철이/청포도(수필) ♧

 

 우리나라 사람들의 본성은 느긋하고 여유로운 것이 다른 민족들이 지
니지 못한 장점이자 단점이며 자랑이라 할 수 있다. 장점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예를 들어 사람이 불의의 사고로 크게 다쳤을 때 앞뒤 일도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급한 마음에 서둘러 의료 행위를 받을 수 있
는 곳으로 옮기다 보면 너무 서둔 나머지 다친 이의 상처를 더욱 깊게
할 수도 있고 만약 다친 이가 신경이나 뼈를 다쳤을 경우라면 더욱 심
각한 일을 초래할 수 있다.
 그리고 하루가 멀다 하고 세상이 과학문명의 세계를 향해 신발도 신
지 않은 채 급히 달려가는 듯한 요즈음 세대엔 안정하다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곳은 이 세상에 단 한 곳도 없다는 것이고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순간도 예측할 수 없이 불의의 사고와 늘 동행하고 있
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며 세상 곳곳이 위험물이라 제 발로 거리를
걷더라도 어느 순간에 본의 아니게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
사고들로 인해 아침에 멀쩡하게 두 발로 걸어서 나갔으면 분명히 저녁
엔 나갔던 길로 되돌아 와야 하는 것이 순리인데 아침에 나갔던 이는
예상치 못했던 사고로 병원에 누운 채 생사의 기로에 서서 남은 인생을
장애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비운을 가슴에 쓸어 담아야 하는 입장에 놓
이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인데 이 불의의 사고들
중 너무 놀라 성급한 마음에 응급처치를 잘못한 탓에 남은 인생 평생을
장애인의 삶을 살아야 하며 이 삶이 성급함 때문에 후천적으로 살게 되
는 삶의 여정이다.


 인공위성이 수시로 지구와 우주를 오고 가는 현대에 살고 있고 하루
를 충실하고 단 1분조차 쪼개어 바삐 생활하며 시간이 금이라고 주장하
는 이들이라면 이 말에 수궁은커녕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 일축하고 말
것이다. 반대편에 서서 대변한다면 로켓트가 달나라 별나라를 오가는
시대에 느긋하고 천천히 라니 말이 아닌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며
쓴웃음만 지을 것이다.
 사실 요즈음 세상에 먼 옛날에 사셨던 우리네 조상처럼 느긋하고 여
유로운 생활을 하며 산다면 우리나라 국민이 지금 이 시대에 누리는 풍
요로움은 없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 전 국민이
다 풍요롭고 다 행복한 생활을 누리진 못한다지만, 가난은 하늘도 구제
못 한다는 옛말도 있듯이 가난한 이가 있어 부유한 이가 존재하는 것이
세상이다.


 아주 먼 옛날 나라의 힘이 없어 외침을 받았고 선량하기만 했지 용기
도 없고 겁많은 본성 때문에 다른 민족의 발아래 무릎을 꿇은 채 살이
미어지는 굴욕을 참아 삼켜야 했던 시절의 아픔 탓에 이를 악물고 밤잠
도 제대로 못 자고 불철주야 허겁지겁 뛰어왔던 덕으로 오늘날 몇 끼니
를 달아서 굶는 사람은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8,15 해방을 맞아 기뻐하던 날들도 일순간 동족의 가슴에 총
부리를 겨누며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형제의 가슴에 총탄을 퍼
붓던 6,25 동란을 치러내면서 어리석게까지 느껴질 정도로 설양하고
여유로웠던 우리나라 국민성이 한눈에 보일 정도로 성급해졌다는 것인
데 이로 인하여 조상 대대로 고유하고 자랑스럽게 여겨오던 삼강오륜조
차 실종된 지 오래되었고 자신을 이 땅에 낳아 살게 해 주었으며 살과
피를 물려주신 부모님께 효도는커녕 자기 인생살이에 걸림돌이 된다고
하여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평생 최선을 다하여 부모님 은혜를 갚을지언
정 어릴 적 아버지 낮잠 주무시다 흐르는 콧물 한번 닦아준 은혜도 다
못 갚으며 어머니 옆구리에 끼고 개울 한번 건네준 은혜조차 다 못 갚
는다던 그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는 부모님의 은혜에는 눈감아
무시해 버리고 인적이 드문 외딴섬에다 자신의 살점을 때어 버리는 인
성을 지닌 인간으로서 인간답지 못한 몰지각한 행위를 서슴지 않는 데
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사 모든 삶과 행동이 빠르고 신속하면 나무랄 것은 없겠고 서둘
러야 할 일이 있겠지만 급히 먹는 떡이 취한다는 말도 있듯이 어떤 일
이든 결정을 내릴 땐 조금만 더 생각하고 실행에 옮긴다면 큰 실수를
행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유를 가지고 너그러운 삶을 사셨던 그 옛날 조상이 존경
스러운 마음마저 생기는 요즈음이다. 무엇이 그리도 급하고 바쁜지...
한 걸음 돌아가면 어디가 덧나는지 한 발짝 쉬다 가면 흘러가는 세월이
멈추기라도 하는 것인지 우리네 조상은 그렇게도 여유가 넘치고 어쩌면
그렇게도 느긋한 생을 사셨을까? 솔직히 그 어른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아무리 급박한 일을 당하여도 칼날처럼 빳빳한 흰 도포 자락에 긴 담
뱃대 입에다 문 채 아랫배 약간 앞으로 내밀고 두 팔 뒷짐 지고 양반걸
음으로 여유롭고 느긋한 자세로 천천히 걸으며 세상살이를 음미하시던
그 삶을…. 해서 난 과일 중에 청포도를 가장 좋아한다.
 세상 온갖 과일들이 제맛과 색깔을 내려고 불과 몇 달만 제외하곤 거
의 1년 내내 양지바른 곳에서 햇살을 쪼이며 영양분을 습치하는 반면에
집에서 청포도 나무를 길렀던 어릴 적 기억으로는 청포도만큼은 연중
초와 중반에는 있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제 존재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색깔도 그렇게 화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설익을 때 맛을 보아도 설익어
도 나름대로 특성 있는 맛을 내는 다른 과일들의 맛에 비해 이게 무슨
맛인가 할 정도로 싱겁고 밋밋했던 맛이 늦가을로 접어들면서부터 온전
한 제맛을 내기 시작하여 그 맛은 어떤 과일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당도가 높고 향기마저도 그 어떤 과일도 쉽게 흉내 내지 못할 정도의
짙은 향을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이 세상 많은 사람이 우선 달콤하고 맛있는 삶보다 시간이 조
금 걸리는 한이 있어도 너그럽고 여유 있는 자세로 좀 더 생각하고
좀 더 참고 기다리는 삶의 길을 걸었으면. 하는 바람 가져봄은 정녕 이
루지 못할 소망에 불과한 것일까 ….


[심사평]

월간 한비문학 29회 수필 부문 신인당선작으로 김철이씨의 "청포도"
를 선정하였다.


 작가는 급박하고 조급하게 돌아가는 현 세태를 느긋하게 열매를 맺어
가는 청포도에 비교하여 교훈적인 메시지를 단단한 구성과 간결한 어조
로 전달하고 있다. 교훈적인 글은 딱딱하고 건조해지기 쉬우나, 옛날 이
야기를 하듯이 글을 이끌어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곳곳에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장치해 놓은 것이나 결론을 청포도라는 대상을
등장시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상장적으로 전달하는 깃 법
등은 많은 사고와 글쓰기의 훈련을 거친 결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수필
문단을 이끄는 견인차가 될 것이라 기대된다.


                                                                   
                                                      심사위원  허일, 안혜초, 신광철, 김영태


당선소감
 먼저, 미흡한 저의 작품을 선정해 주시고 한울타리 안의 가족으로
받아주신 한비문학 발행인님과 관계자 여러분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세상사 인연이란 참으로 기묘한 것인가 봅니다. 한국 문단의 문예지
들이 운영해 나아가기가 무척이나 힘겨운 실정이라 계간이나 격월 관으
로 발행되고 있는 현실을 잘 알고 있기에… 아무런 계산 없이 그저 글
이 좋아 아무런 지식도 배움의 터전도 없이 무지하다 할 정도로 온갖
열정을 다 쏟아 습작해 왔던 기대만큼이나 몇몇 문예지의 발행인님들께
대한 실망 또한 컸기에…
 그래도 혹여나 하는 생각으로 황금을 쫓는 문예지가 아니라 순수 문
학을 존중하고 어렵더라도 오직 글로써 승부를 거는 그야말로 한 점의
티도 없는 문예지를 백방으로 찾던 중 우연한 기회에 제 남은 인생 여
정에 귀인으로 기록이 남을 귀인을 온라인 상으로 만나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데 무작정 글이 좋아 35년이란 그리 짧지 않은 세월의 공간 속에
서 다 풀어놓지 못했던 글에 대한 열정과 한을 한비문학이란 공간 속에
다 풀어놓기를 소망할 따름입니다.
 지금 이 순간 맺은 소중한 인연을 앞으로 세상을 살면서 더욱 소중하
게 여길 수 있기를 바라며 미흡한 제 글의 끈을 풀 수 있도록 저의 작품
을 선정해 주신 모든 귀하신 임들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