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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코멘터리 성경 통독 | 창세기 16장 - 하가르는 옛 계약을 상징한다

松竹/김철이 2026. 7. 22. 07:00

[창세기 16장 - 하가르는 옛 계약을 상징한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코멘터리 성경통독, 창세기.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XYPr06BUR7g

 

 

창세기 16장에서 바오로 사도는 두 계약의 우의를 읽었습니다.
갈라티아서 4장에서 그는 말합니다 — 여종에게서 난 아들은 육에 따라 태어났고 자유의 여인에게서 난 아들은 약속으로 태어났으니, 이 두 여인은 두 계약이라고 말합니다.
하가르는 시나이 계약, 곧 자기 힘으로 율법을 지켜 의로워지려는 길이며, 그 길은 종살이를 낳습니다.
사라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 곧 오직 하느님의 은총과 약속으로 자녀가 태어나는 새 계약이며, 그가 우리의 어머니가 됩니다.
그렇다면 왜 구약이 반드시 먼저 와야 했을까요?
무화과 잎을 엮어 보아야 그것으로 부끄러움이 가려지지 않음을 알듯, 사람은 율법을 제 힘으로 지켜 보려다 실패해 보아야 자신이 스스로의 구원자가 될 수 없음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갈라티아서 3장 24절대로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교사이니, 그 실패의 교육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은총 앞에 무릎 꿇지 않습니다.
하가르의 길이 먼저 있어야 사라의 길이 은총임을 알고, 이스마엘을 낳아 보아야 이사악이 선물임을 압니다. 
스스로 하려는 노력이 헛됨을 깨달을 때야 기도로 은총을 청할 줄 아는 신약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제 힘으로 하느님과의 올바른 이룰 수 없습니다. 인간적 방법은 업신여김과 다툼과 도망만을 낳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실패의 광야에도 샘이 있어, 보시는 하느님께서 쫓겨난 이를 찾아와 들어 주십니다. 스스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려는 노력, 그것 자체가 하느님과의 온전한 계약을 이뤄주지는 못하지만, 그런 노력을 하는 사람을 하느님은 지켜보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