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코멘터리 성경 통독. 창세기 제6장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8nN3UPo9A3Y
창세기 6장 · 코멘터리 성경통독
【하느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 창세 6,1-4】
1 땅 위에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그들에게서 딸들이 태어났다.
2 하느님의 아들들은 사람의 딸들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여자들을 골라 모두 아내로 삼았다.
▷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 15권에서 '하느님의 아들들'을 하늘에 속한 셋의 후손으로, '사람의 딸들'을 땅에 속한 카인의 후손으로 풀이합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보고" 탐하였듯, 하늘의 자녀들이 세상 것을 "보고" 아름다워 그것을 차지한 것입니다.
▷ 무엇을 좋아하면 그것과 한 몸이 되어 같은 운명을 맞습니다. 돈과 한 몸이 된 사람은 돈이 무너질 때 제 몸이 끊어지는 고통으로 함께 무너지는 것과 같습니다.
3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살덩어리일 따름이니, 나의 영이 그들 안에 영원히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들은 백이십 년밖에 살지 못한다.”
▷ 세상 것과 한 몸이 되자, 아담의 코에 불어 넣어졌던 하느님의 영, 곧 루아흐가 빠져나갑니다. 남는 것은 '살덩어리', 히브리 말로 '바사르'(בָּשָׂר)뿐이니, 영적인 존재가 고깃덩어리로 떨어진 것입니다.
4 하느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한자리에 들어 그들에게서 자식이 태어나던 그때와 그 뒤에도 세상에는 나필족이 있었는데, 그들은 옛날의 용사들로서 이름난 장사들이었다.
▷ '나필족', 곧 네피림(נְפִלִים)은 '떨어지다'를 뜻하는 '나팔'(נָפַל)에서 나온 말이니, 거인이 되려다 오히려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진 자들'입니다. 사람이 돈과 결합해 부자라는 거인이 되려 하듯, 스스로 커지려는 이 욕망이 선악과 이래 모든 죄의 뿌리입니다.
▷ 이 집착에서 벗어나는 길은 움켜쥔 것을 도로 봉헌하는 것이니, 훗날 아브라함은 얻은 것의 십분의 일을 바치는 봉헌으로 그 길을 엽니다(창세 14,20).
【하느님의 후회와 노아 — 창세 6,5-10】
5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악이 세상에 많아지고, 그들 마음의 모든 생각과 뜻이 언제나 악하기만 한 것을 보시고,
6 세상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
▷ 하느님은 무섭게 분노하시기보다 먼저 "마음 아파하십니다." 자녀가 스스로 무너져 가는 것을 지켜보는 부모의 아픔입니다.
7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창조한 사람들을 이 땅 위에서 쓸어버리겠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과 기어 다니는 것들과 하늘의 새들까지 쓸어버리겠다. 내가 그것들을 만든 것이 후회스럽구나!”
8 그러나 노아만은 주님의 눈에 들었다.
▷ 자녀가 자녀로 완성되지 못할 때, 부모에겐 그 자녀도, 그 자녀를 위해 준비한 것도 후회스럽게 됩니다. 그러나 모두가 커지려고 위로 오를 때, 낮게 순종하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런 한 사람을 위해 그 많은 후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창조는 멈추지 않습니다.
9 노아의 역사는 이러하다. 노아는 당대에 의롭고 흠 없는 사람이었다. 노아는 하느님과 함께 살아갔다.
10 그리고 노아는 아들 셋, 곧 셈과 함과 야펫을 낳았다.
▷ 노아도 에녹처럼 "하느님과 함께" 걸었습니다. 의로움이란 특별한 업적이 아니라, 하느님과 동행하며 그분 뜻에 순종하는 일상입니다.
【폭력으로 가득 찬 세상 — 창세 6,11-13】
11 세상은 하느님 앞에 타락해 있었다. 세상은 폭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12 하느님께서 내려다보시니, 세상은 타락해 있었다. 정녕 모든 살덩어리가 세상에서 타락한 길을 걷고 있었다.
▷ '폭력'의 히브리 말 '하마스'(חָמָס)는 남의 것을 빼앗아 제 것으로 삼는 강탈입니다. 스스로 커지려는 자는 카인처럼 남을 밟고 죽이게 되니, 거인이 되려는 욕망은 반드시 폭력을 낳습니다.
13 하느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모든 살덩어리들을 멸망시키기로 결정하였다. 그들로 말미암아 세상이 폭력으로 가득 찼다. 나 이제 그들을 세상에서 없애 버리겠다.
▷ 생명으로 가득 차야 할 세상이 폭력으로 가득 찼습니다. 창조의 목적이 뒤집힌 세상은 이제 혼돈의 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또한 인류 마지막 때의 예고일 수 있습니다.
【방주 — 창세 6,14-17】
14 너는 전나무로 방주 한 척을 만들어라. 그 방주에 작은 방들을 만들고, 안과 밖을 역청으로 칠하여라.
15 너는 그것을 이렇게 만들어라. 방주의 길이는 삼백 암마, 너비는 쉰 암마, 높이는 서른 암마이다.
▷ 길이 삼백, 너비 쉰, 높이 서른 —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 15권 26장에서 이 6대 1, 10대 1의 비율이 누워 있는 사람 몸의 비율과 같다고 보았습니다. 방주는 곧 한 사람의 몸, 나무 위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를 미리 그린 것입니다.
16 그 방주에 지붕을 만들고 위로 한 암마 올려 마무리하여라. 문은 방주 옆쪽에 내어라. 그리고 그 방주를 아래층과 둘째 층과 셋째 층으로 만들어라.
▷ 문이 '옆쪽에' 나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를 창에 찔리신 그리스도의 옆구리로 읽었으니, 거기서 흘러나온 피와 물의 성사를 통해서만 사람은 구원의 방주인 교회로 들어갑니다.
▷ 교회는 이 방주만이 홍수에서 생명을 구하였듯 교회가 구원의 방주임을 가르치고(가톨릭교회교리서 845항), 베드로 1서 3장 20절이 말하듯 이 물은 우리를 구원하는 세례를 미리 보여 줍니다.
17 이제 내가 세상에 홍수를 일으켜, 하늘 아래 살아 숨쉬는 모든 살덩어리들을 없애 버리겠다.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이 숨지고 말 것이다.
▷ 루아흐를 잃고 살덩어리가 된 것들은 물속에서 숨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방주에 머무는 이들만이 영을 간직하여 물의 심판이 오히려 세상에서의 구원이 되게 합니다.
【첫 계약 — 창세 6,18-22】
18 그러나 내가 너와는 내 계약을 세우겠다. 너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로 들어가거라.
▷ 성경에 '계약', 히브리 말 '베리트'(בְּרִית)가 처음 등장합니다. 계약은 곧 관계이니, 쌍방이 서로 지켜야 할 의무로 묶이는 관계를 위한 약속입니다.
19 그리고 온갖 생물 가운데에서, 온갖 살덩어리 가운데에서 한 쌍씩 방주에 데리고 들어가, 너와 함께 살아남게 하여라. 그것들은 수컷과 암컷이어야 한다.
20 새도 제 종류대로, 짐승도 제 종류대로,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것들도 제 종류대로, 한 쌍씩 너에게로 와서 살아남게 하여라.
21 그리고 너는 먹을 수 있는 온갖 양식을 가져다 쌓아 두어, 너와 그들의 양식이 되게 하여라.”
▷ 계약에서 노아가 질 의무는 하나,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 안에서 하느님이 원하시는 생명들을 살리는 일입니다. 양식을 주어 살게 하고 번식하게 하는 것 — 노아는 이렇게 하느님의 창조 사업의 협력자가 됩니다.
22 노아는 그대로 하였다. 하느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하였다.
▷ "명령하신 대로 다 하였다" — 이 짧은 한 줄이 노아의 전부입니다. 순종은 나를 작게 만드는 것 같지만, 실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참으로 커지는 유일한 길입니다.
【맺는 말】
창세기 6장은 두 길을 대비시킵니다.
하늘의 자녀들이 세상 것과 한 몸이 되어 거인이 되려 하자, 생명의 숨 루아흐가 떠나고 살덩어리와 폭력만 남았습니다.
스스로 커지려는 자는 떨어지고, 순종으로 작아진 노아만이 하느님 눈에 들어 참으로 커집니다.
그리고 그 노아에게 맡겨진 방주는 사람 몸의 비율로 지어졌으니, 곧 옆구리가 열리신 그리스도의 몸, 홍수 속에서 생명을 살리는 교회입니다.
누구든 이 방주에 들어가 순종으로 생명을 살리는 이가,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그분의 자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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