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보따리

신앙 이야기 |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松竹/김철이 2025. 4. 14. 14:32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지금껏 한번도 느껴보 지 못했던 이 느낌이 미스테리하기까지 했다. 너 무 확실한데 형언하기가 어려워서 누구에게 설명 하기도 어려웠다. 너무 좋아서 퇴근 후의 그 시간 이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코로나가 회복될 즈음에 불어닥친 경기 한파 는 나에게도 예외가 없었다. 남편의 일도, 나의 직 장도 뜻대로 되지 않았고 갑상샘 관련 지병도 재 발하여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 있었다. 모든 일들 이 의도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느껴졌다. 지병과 함께 찾아온 우울감은 끝이 어디인지 모 를 지경이었다. 9일 기도를 시작했다. 절박함이긴 했지만. 무교였던 남편이 15년 전 나의 권유로 세 례를 받았고, 3년이 넘도록 하루도 빠짐없이 묵주 기도를 하는 나의 모습에 자극이 된 것도 사실이 었다. 본디 나는 모태신앙자인데 힘겨울 때만 다 급히 신앙을 찾는 전형적인 ‘나이롱 신자’였다. 주 일 미사는 물론 평일 미사도 꾸준히 참석하는 주 위 신자들을 보면 나와는 좀 다른 세계의 사람들 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에게 주 일 미사는 언제나 의무감뿐이었고 1년에 두 번 하 는 판공성사도 빼먹기 일쑤였다. 절박함에서 시 작한 9일 기도는 나에게 ‘숙제’였다. 어느 날은 빼 먹어서 다음 날 두 번 하기도 했고, 미루고 미루다 잠들기 직전에 하다 보니 반은 졸기 일쑤였다. 그 렇게 시작하여 청원기도가 끝나고 감사기도가 시 작될 무렵이었을까.

 

미루고 졸기 일쑤였던 그 시간이 이상한 감정 으로 변하고 있었다. 마치 엔도르핀이 폭발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퇴 근 후의 기도 시간이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이 느 낌이 나조차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너무 확실해서 이상하기까지 했다. 그렇다 보니 9일 기도가 끝난 후에도 묵주기도는 나에게 매일의 일과가 되었다. ‘숙제’가 아닌 ‘감사’의 시간으로.

 

어느 날,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 중이었다. 그날 의 복음 말씀 중에는,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 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46-49)라고 마리아께서 엘리 사벳에게 하신 구절이 있었다. 그 구절을 듣다 갑 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비천한 종! 그분께서 ‘나’라는 이 비천한 종 을 굽어보신 거였구나! 내가 뭐라고 굽어봐 주셨 을까…. 그 알 수 없었던 기쁨의 감정들. 나조차 이 해할 수 없었던 그 신비한 기쁨의 시간이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너무 감사해서 미사 중에 눈물이 쏟아졌다. 그 몇 달 후, 생각해 보니 절박함에 적 었던 청원기도들은 모두 이루어져 있었다. 기도를 들어주셔서 느낀 감사함도 컸지만, 그 감사함을 느끼게 해주신 감사함이 말할 수 없이 컸다.

 

그 후, 내가 삶을 바라보는 관점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호스피스 간호사인 나는 어느덧 ‘좋은 일 을 할 수 있는 충만한 역량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 하고 있었고, 환자와 보호자에게서 모두 예수님의 모습을 찾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때때로 삶 이 나른해지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로 지쳐 갈 때, 그래도 감사하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이 비천한 종을 굽어봐 주셨다’는 확신이 있어서가 아닐까.

 

돈 보스코 성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악은 기뻐하는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기쁨 속 에서 주님을 섬기십시오.”

“기쁨은 기도입니다. 기쁨은 굳셈입니다. 기쁨 은 사랑입니다.”

오늘도 기쁨 속에서 기도하는 하루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