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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요셉 신부님 | 참행복은 핏줄보다 가족 안에서 , 3월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 미사, 2025 03 01

松竹/김철이 2025. 3. 1. 07:00

[참행복은 핏줄보다 가족 안에서 ] 3월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 미사, 전삼용 요셉 신부님, 2025 03 01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CQ2rfmgc-28

 

 

 

2025년 3월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미사 – 참행복은 핏줄보다 가족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어떤 때는 ‘신앙이 먼저일까, 가족이 먼저일까?’를 고민해야 할 때가 옵니다. 이때 오늘 복음이 도움이 됩니다. 
오늘 복음(마태오 12,46-50)에서 예수님께서는 피로 이어진 형제자매와 어머니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라고 하시는 놀라운 선언을 하십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혈연 중심의 가족 개념을 뛰어넘어, 하느님 안에서 사랑과 희생으로 묶인 공동체가 더 진실하고도 강력한 가족이 될 수 있음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지요.
우리 한국에는 오래전부터 “이웃사촌”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촌은 분명 혈연으로 연결된 친척을 말하지만, 가깝게 살지 않으면 정작 자주 보지 못합니다. 반면, 막상 가까운 동네에서 자주 보고 정을 나누는 이웃들은 혈연은 아니더라도 친사촌 이상으로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정한 가족” 또한 이와 같지 않을까요? 피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도, 서로 사랑하고 희생하는 마음으로 결속된 이들이 어느새 혈연보다 더 끈끈한 유대를 이루는 것이지요.

이런 점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작품이 있습니다. 영화 「인스턴트 패밀리(Instant Family)」는 부부가 세 아이를 입양하게 된 계기와 그 후의 이야기를 사실적이고도 감동적으로 그려냅니다. 이 부부는 처음부터 “우리 힘으로 아이를 키워 보자”라고 결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종의 충동과 책임감이 뒤섞인 상황에서 위탁가정 시스템을 통해 한 아이를 맡게 되리라 생각했는데, 가 보니 열다섯 살짜리 큰딸 리지와 동생 둘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을 떼어놓기가 너무 미안해서, 다 함께 입양을 진행하게 됩니다.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쉽지 않은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옵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큰딸 리지는 가족이나 어른에 대한 불신이 가득합니다. 동생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새 부모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사소한 충돌들이 계속됩니다. 아직 어린 동생들은 시시때때로 사고를 치고, 집안이 엉망진창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큰딸은 “친엄마가 곧 돌아올 텐데, 왜 우리가 여기서 살아야 하느냐”며 입양 부모와 대립하지요. 부모 입장에서는 “우리가 이런 고생을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입양으로 인한 갈등이 심해집니다.
그러다 친엄마가 정말로 연락을 해오고, 법원 판결에 따라 아이들이 그 엄마 품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미 정이 든 새 부모와 세 아이들은 이 소식을 듣고 복잡한 감정을 느낍니다. 처음에는 그저 “착한 일 좀 해 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막상 아이들을 키우면서 대단히 많은 희생과 사랑을 쏟아붓게 되었고, 그것이 점점 ‘진짜 가족애’로 변해 버린 것입니다. 아이들 역시 처음에는 “우리 엄마가 있는데, 왜 남의 집에서 이 고생을 해야 해?”라고 생각했지만, 점차 새 부모가 보여 주는 따뜻한 돌봄과 헌신을 느끼며 이 가족 안에서 안정감을 얻습니다.
법적, 제도적 절차 때문에 아이들이 진짜 엄마 품으로 가야 할지, 새 부모와 계속 살아야 할지가 결정되지 않았던 그 갈림길에서, 큰딸 리지는 갈등을 극도로 표출합니다. 엄마를 배신한다는 죄책감, 이제 와서 새 부모를 떠나기에는 차마 아쉬운 마음, 동생들을 생각하는 책임감이 한꺼번에 터져 나옵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큰딸은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을 보여 준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고, 새 부모와 함께 살겠다는 쪽을 스스로 선택합니다. 현실적으로 자신들을 버리고 마약에 취해 살아온 친엄마보다, 매일매일 곁에서 희생하며 함께 울고 웃어 주었던 새 부모가 ‘진짜 가족’이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이지요. 그렇게 이 영화는 세 아이와 부부가 법원 판결을 통해 한 집안 식구가 되는 모습으로 감동적인 결말을 맺습니다. 혈연이 아니지만, “사랑과 희생이 섞인 새 부모”와 “그 사랑을 받아들이게 된 아이들” 사이에 맺어진 가정이야말로 한층 더 깊고 성숙한 가족이 될 수 있음을 강력하게 보여 주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혈연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이가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라는 말씀이 결코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희생과 사랑으로 피를 나누지 않은 사람과도 ‘진짜 가족’을 만들 수 있다는 것, 이 가족이 주는 유익과 행복이 결코 적지 않다는 사실이 그 증거입니다. 생물학적 편안함이나 안정 대신, 서로의 삶을 조금씩 내어주며 함께하는 길을 택한 결과, 얻게 되는 기쁨과 연대감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는 편안함보다는 사랑과 희생이 공존하는 곳에서 더 큰 행복을 얻는다.”는 말은 한낱 이상론이 아니라, 우리가 눈으로 보고 체험할 수 있는 진리라는 것이지요.
비슷한 맥락에서 애니메이션 영화 「E.T.」를 떠올려 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꼬마 엘리엇과 그의 가족은 우주에서 온 이티와 가족처럼 지내면서, 서로 다른 세계와의 만남이 얼마나 큰 감동과 변화를 일으키는지를 체험합니다. 비록 마지막에는 이티가 다시 자기 별로 돌아가야 해서 헤어지지만, 엘리엇 가족과 이티가 함께했던 시간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자 소중한 성장의 발판이 됩니다. 서로를 받아들이고 교감하는 과정 속에서 엘리엇과 형제자매, 심지어 어른들도 사랑을 배워 가게 되지요. 분명 가족이 아닌 존재임에도, 함께 생활하며 얻은 감동과 진정한 유대감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와도 가족이 될 수 있음을 다시금 알려 줍니다.
결국 우리가 한없이 편한 삶만 추구한다면, 새롭게 탄생할 수 있는 많은 가족의 기회들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지만, 잃는 사람은 오히려 목숨을 얻을 것이다.”(루카 9,24 참조)라는 성경 말씀처럼, 자기 자신만을 지키려는 태도는 오히려 생명을 잃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사랑의 실천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은, 혈연을 넘은 새로운 가족을 얻게 되고, 그 안에서 더욱 풍성한 생명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이는 사도 바오로가 말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2코린토 5,14)라는 말씀과 맞닿아 있고, 교부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내 안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던 가르침을 되새기게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부부 선교사 사례를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습니다. 짐 엘리엇과 엘리사벳 엘리엇 부부는, ‘피가 섞인 나의 가족’만을 위해 사는 삶보다는, “하느님 안에서 더 큰 가족이 되기 위한 길”을 택했습니다. 남아메리카 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본국의 편안함을 내려놓고 험난한 정글로 떠났지요. 그 과정에서 짐 엘리엇은 비극적으로 원주민들에게 목숨을 잃게 되지만, 그의 아내 엘리사벳 엘리엇은 오히려 그 부족을 향한 원망 대신, 계속해서 복음과 사랑을 전하며 “다시 태어나도 이 삶을 선택하겠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느님 안에서의 가족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꿈꾸던 편안함을 희생했고, 그 희생이 빚어낸 열매는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회심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가족은 물론 핏줄로 엮인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만 머물지 않고, 사랑과 희생이 깃들어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가는 삶이야말로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길이자, 진정한 복음 실천의 모습이 아닐까요? “이웃사촌”이라는 한국의 속담은 오래전에 이미 “핏줄보다 정으로 가족 같은 관계가 더 중요하다.”라는 진리를 일깨웠습니다. 하느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 역시 편안한 안주 대신, 서로에게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적극적으로 문을 열어 봅시다. 그 희생과 사랑으로 말미암아 탄생할 새로운 가족은, 결국 우리에게 더 깊은 행복과 진정한 구원의 삶을 선사해 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핏줄보다 가족”이 되는 길이요, 우리가 교회 공동체로서 걸어가야 할 아름다운 길이 될 것입니다. 아멘.

부부는 왜 피가 섞이지 않았는데 0촌이고, 부모와 자녀는 1촌, 형제는 2촌일까? 그건 그냥 피를 나누는 것보다 사랑을 나누는 게 진정한 가족이라는 의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