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悔改), 너는 안 하니?
우리 본당의 십자고상(十字苦像)은 예수님의 시 선이 왼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십자고상 에서 예수님은 머리를 오른쪽으로 떨구고 계시는 데, 이는 예수님께서 골고타 언덕에서 돌아가실 때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린 두 죄수 중 한 명은 예수님을 조롱했지만, 다른 한 명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께 믿음을 고백했습니다.(루카 23,42 참조) 예수님은 그에게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43)라고 응답하셨습니 다. 이 회개한 죄수는 성 디스마스(성 라트로)로, 축 일은 3월 25일입니다.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신앙으로 비신자인 아내 와 혼인성사를 받고 두 아들을 주님에게서 선물로 받았습니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하느님께 맡겨 져 복사 및 예비신학교를 거쳐 지금은 어엿한 사회 인으로 성장했습니다. 저 또한 겉으로 보기에는 아 무 문제없이 신앙생활을 하며 성가정을 이루기 위 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허전함 이 있었습니다. 성체조배를 하고, 갑곶 성지의 예수 님 십자고상 발목을 잡고 기도해 보았지만, 그 허전 함의 이유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꾸르실료 교육 기 간 동안 지도 신부님이 지시하신 묵상과 성체조배 를 통해 우리 본당 십자고상을 바라보며 그 허전함 의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내 머릿속에서 오른쪽만 바라보던 예수님께서 좌측에 있는 '나'를 보면서 들 려주신 “너는 뭐 하니? 회개 안 하니?”라는 그 음 성을 나는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마치 좌도(左盜)처 럼 예수님께 꾸짖음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중학교 시절, 수업료를 내지 못해 담임 선생님 께 꾸지람을 듣던 기억이 있습니다. 부모님은 이번 주에 고추 팔면 다음 주에 주신다고 이야기했는데, 첫 수확물을 하느님께 바치기 위해 수업료보다 교 무금을 먼저 내셨습니다. 부모님의 신앙생활은 언 제나 성당과 하느님이 우선이었습니다. 이런 부모 님의 영향을 받아 나도 신앙생활을 이어왔지만, 부 모님을 흉내 낸 것에 불과하였으며 ‘나와 하느님’ 간의 온전한 의탁과 간절함이 부족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나의 교만과 위선으로 상처받 았을 주님과 이웃들을 생각하며 참회의 눈물을 흘 렸습니다.
지금도 미사 시간에 십자고상의 예수님을 바라 보며 나 자신이 행복한지, 슬퍼하는지, 기뻐하는지 를 헤아려 보곤 합니다. 몇 년 전, 큰아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진로를 변경한다고 했을 때, 도저히 감당 할 수 없어 무작정 성당에 가서 십자고상을 바라보 며 한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 온전히 의탁 하며 회개하니 예수님께서는 ‘그는 네 아들이 아니 라 내 아들이니, 그가 하고자 하는 대로 하게 하여 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로 아들은 원하는 일 을 하며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오래전, 하느님께서 제게 주신 사명(使命)이 무 엇인지 답을 얻고자 시간이 될 때마다 성체조배를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은 지 식(知識)의 영(靈)과 호의(好意)라는 성령의 열매임 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이 이방인들에게 보여주신 사랑을 본받아서 이주민들을 돕고자 한 국어 교원 자격증을 따고, 외국인 근로자 쉼터에서 봉사도 하였습니다. 지금은 환갑이 넘은 나이이지 만 모 대학 교육대학원 한국어교육과에 입학하여 공부하고 있습니다. 한 학기를 마치고 성적표를 들 고 주님께 자랑도 하며, 성령이 내 안에 임하여 나 를 일으켜 세우심에 감사드렸습니다.
성체조배를 할 때, 저는 감실보다 십자고상을 바 라봅니다. 십자고상의 예수님은 내 마음에 따라 여 러 모습으로 변화됨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너는 회개 안 하니?” 하고 물으시기 전에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고 회개하니,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가톨릭 신자로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 습을 바라보며 나의 죄를 진정으로 회개하고 참회 하며, 인류를 위해 대속하신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 를 느끼며 살아가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 라 아주 조금이라도 그러할 수 있도록 주님께 은총 을 청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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