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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요셉 신부님 | 누군가와의 만남이 천국이나 지옥이 되는 이유는? |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 미사, 2025 01 04

松竹/김철이 2025. 1. 4. 07:00

[누군가와의 만남이 천국이나 지옥이 되는 이유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 미사, 전삼용 요셉 신부님, 2025 01 04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GAbUM2PLGuI

 

 

 

2025년 다해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 미사 – 누군가와의 만남이 천국이나 지옥이 되는 이유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성모 마리아께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며 겸손히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루카 1,38)라고 응답하신 장면을 묵상합니다. 이러한 자세는 우리가 하느님을 만날 때 준비된 마음과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깊은 교훈을 줍니다. 이를 통해 모든 관계가 계약에 기반하며, 그 계약을 지키지 못하면 양심상 그 만남이 지옥처럼 느껴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심으로써 우리를 위한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이는 마치 자녀가 부모의 뜻을 잘 따를 때, 부모를 만날 용기가 생기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자녀가 부모의 뜻을 거스르고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부모를 만나는 것은 오히려 부담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자녀가 부모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고 느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영원히 떠나는 이야기를 떠올려 봅시다. 이는 마치 우리가 하느님 앞에 부끄러운 삶을 살아 그분께 나아갈 용기를 잃는 것과 비슷합니다. 성경에서 야곱이 에사우를 만나는 장면이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야곱은 에사우를 속이고 장자의 권리를 빼앗은 후 20년 동안 라반의 집에서 고된 삶을 살며 자신의 잘못을 속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에사우의 은총을 빼앗은 것에 대한 부채를 갚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일하며 많은 재산을 모았습니다. 이후 야곱은 자신이 얻은 모든 것을 에사우에게 돌려주기 위해 수많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고 느낀 그는 야뽁 강가에서 하느님의 천사와 밤새 씨름하며 축복을 구했습니다(창세 32,24-31).
야곱은 이러한 겸손한 태도로 자신을 낮추고 에사우에게 나아갈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에사우는 야곱을 용서하며 그를 따뜻하게 맞아주었습니다. 여기서 에사우는 그리스도의 상징이고, 야곱은 우리 자신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느님의 은총을 자신의 힘으로 얻으려 하지만, 결국 겸손하게 하느님께 의지하고, 그분의 자비를 구해야만 참된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에사우가 야곱에게 준 용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용서를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께 아무 것도 준비하지 못하고 막상 그분을 만나는 상황이 되면 ‘양심’상 우리는 그분을 만나는 게 지옥처럼 느껴지기에 진짜 지옥을 향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관계는 계약입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 역시 성사와 말씀을 통해 이루어진 거룩한 계약입니다. 그러나 이 계약을 지키지 못하면, 양심은 평화를 잃고 만남은 지옥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교부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무를 다하지 않는 사람은 양심의 무게로 인해 진정한 평화를 찾을 수 없다.”
야곱과 에사우의 만남은 단순히 형제간의 화해가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양심을 깨끗이 하고 평화를 되찾는 여정을 상징합니다. 야곱은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모든 것을 에사우 덕분이라고 고백하며 자신을 낮췄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느님께 받은 모든 은총을 감사히 여기고, 겸손히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저는 매년 1월 1일에 주교님과 여러 신부님들을 모시고 미사를 드리며 떡국을 대접합니다. 하지만 매년 그날이 다가오면 부담을 느낍니다. 주교님은 저에게 유학의 기회를 주셨고, 많은 어려움 속에서 저를 보호해 주신 은혜로운 분이십니다. 그러나 저는 항상 그 은혜에 충분히 보답하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그러한 마음이 오히려 불안과 긴장을 낳아 실수하게 만듭니다.
올해가 지난해보다 조금 덜 부담스러웠던 이유는 본당에서 1년 동안 좋은 성과를 내고 그 결과를 주교님께 보여드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깨닫습니다. 주교님을 맞이할 준비는 그날 하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늘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요. 이는 하느님을 만나는 우리의 삶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언젠가 나아가야 할 빚진 자들입니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그 빚을 갚아나가려고 노력한다면,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실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런 노력도 없이 그날을 맞이한다면, 우리의 양심은 우리를 돌이키게 할 것입니다.
교부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 앞에 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의 삶은 그분의 빛 앞에서 어둠이 된다.” 성모님께서 하느님의 뜻에 겸손히 순종하며 매일 충실히 살아가신 것처럼, 우리도 오늘부터 하느님의 은혜를 갚아나가는 삶을 시작합시다. 이는 하느님을 만나는 날, 그 만남이 지옥이 아니라 기쁨이 되게 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