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4주일 복음 특강] 가장 완전한 자존감: 낳음 I 전삼용 요셉 신부님(수원교구 조원동 주교좌 성당주임) 2024.12.22 천주교/가톨릭/신부님강의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aMHHna9LEF4
대림 제4주일 – 가장 완전한 자존감: 낳음
엘리사벳은 성모님께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실 것을 믿으신 것을 축복하며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말씀은 단순히 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믿음을 통한 내적 자존감의 완성을 보여줍니다. 성모님은 하느님을 낳으실 수 있다고 믿으셨습니다. 이것이 행복의 원인입니다. 결국 자존감의 하락은 ‘나는 누구도 낳을 수 없는 존재야!’로 측정되고 자존감의 상승은 ‘나는 누구도 낳을 수 있는 존재야!’로 귀결됩니다.
제가 만났던 한 자매는 7년간 아이를 갖지 못해 심각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소화가 하도 안 되어 매일 선식만을 먹어야 했습니다. 아기를 갖지 못하는 스트레스가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김상운 방송인이 쓴 책에는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한 여인은 아기를 낳은 후 누군가 아기를 훔쳐 갈까 두려워 아파트 자물쇠를 바꾸고 창문에 창살을 치며 자신을 보호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어머니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아기를 낳고 키우기 위해서는 상당한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자존감이 없으면 자녀도 낳거나 키울 수 없습니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행복과 자존감의 관계를 강조합니다. 하버드 대학교의 심리학자 대니얼 길버트는 복권에 당첨되거나 장애를 입는 극단적인 사건이 있더라도, 몇 달 후 사람들은 본래의 행복 수준으로 돌아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외부 조건보다 내면의 믿음과 자존감이 행복의 근본임을 보여줍니다.
성경에서도 이러한 자존감과 믿음을 통해 이루어지는 행복의 예가 여러 번 나옵니다. 창세기 18장에서 사라와 사무엘기 상권 1장에서 한나입니다. 이들처럼 누군가를 ‘낳을 수 있다’라는 믿음은 가장 강력한 자존감을 형성합니다. 루카 복음 1장에서 엘리사벳은 성모 마리아를 축복하며 “제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루카 1,43)라고 말합니다. 엘리사벳과 마리아 모두 자녀를 낳는 믿음을 통해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동참했습니다.
이는 아담과 하와가 자존감을 잃은 것과 상반됩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고는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느님 자녀를 낳을 수 있는 권리를 스스로 잃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극심한 고난 속에서 자라며 삶의 의미를 잃었습니다. 10년간의 고된 노동에 지쳐 탈출하여 자신을 거두어주었던 집을 찾았습니다. 동네는 알았지만, 정확한 집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다 나환자가 사는 산속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보기에 너무나 무서운 나환자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는 친절하게도 집을 찾아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집에서도 환영받지 못하였고 극단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께서 나환자들에게로 가시며 “저들도 사는데 넌 왜 못 사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새로운 자존감이 되었습니다. 이 자존감이 ‘나도 살 수 있고, 나도 결혼할 수 있고, 나도 자녀를 낳아 키울 수 있다!’라는 자존감을 준 것이고 이 자존감이 없었다면 저희는 태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존감을 얻는 시간이 바로 ‘기도’입니다. 특별히 묵상기도입니다. 아무리 내 주위에 좋은 모범이 있더라도 그것이 성령으로 나에게 이해되지 않으면 힘이 되지 못합니다.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이러한 자존감 회복의 강력한 사례를 보여줍니다. 이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은 자신의 죄와 아픔을 마주하며 스스로를 용서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는 자신이 한 여자를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임을 느끼며 자존감을 회복하였기 때문입니다. 여자 주인공 또한 어머니에 대한 깊은 상처를 이해하고 용서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과 타인에 대한 새로운 신뢰와 사랑을 발견합니다. 이는 자신이 또한 한 남자를 변화시킬 힘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사람을 낳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용서 못할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존재라는 자존감을 갖게 한 것입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새로운 생명을 낳는 기쁨은 하느님의 창조에 동참하는 가장 큰 축복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완전한 믿음을 통해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실 것을 믿으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수난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지만, 결국엔 행복의 길을 보여주었습니다. 행복을 주는 믿음은 무엇을 낳을 수 있느냐는 믿음에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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