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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1027 오늘의 말씀

松竹/김철이 2024. 10. 27. 07:50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1027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fd1wEa6DSTY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연중 제30주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바르티매오”

우리의 생활 안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을 우리는 모두 알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사연과 상황 속에 살게 되기에 겉으로 드러난 지금의 현실은 과거의 모든 것들이 쌓이고 연관되어 나타나며 또 그것은 결과이면서 동시에 미래를 위한 과정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활하면서 이름이라도 알게 되는 것은 생각보다 특별한 인연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복음 속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한 사람을 만납니다.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

주님을 만나 눈을 뜨게 되는 이 기적의 사람을 우리는 누구라 부릅니까? ‘바르티매오’라고 기억하게 될 이 이름의 주인공은 아버지가 ‘티매오’라고 말합니다. ‘바르티매오’는 ‘티매오의’로 해석될 수 있는 말입니다. 달리 말하면 티매오라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말장난 같지만 어쩌면 사람들은 그를 기억할 때 그의 아버지 외에 그의 이름을 몰랐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가 된 시몬을 시몬 바르요나라고 말할 때 그는 ‘요나의 아들 시몬’이라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는 처음 ‘눈먼 거지’로 표현됩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데 구걸해서 먹고사는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누가 그의 이름을 기억하며 그의 사연을 들어주려 했겠습니까? 그런 모습이 복음에는 그에게 일어난 기적 이전 가득합니다. 

“그래서 많은 이가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복음 속 그는 주님 앞에서 자신이 잘하는 ‘구걸’하는 듯 보입니다. 아무도 공감해주지 않는 상태에 홀로 목이 터져라 외칩니다. ‘주님이 계실 곳’을 향해 말입니다. 들으라고 소리를 지르면 더 크게 지를수록 확률이 높아집니다. 홀로 외치는 눈먼 거지를 우리는 발견하고 그에게 고함을 지릅니다. 잠자코 있으라고 말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금세 이 모습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

같은 사람에게서 나온 이야기로 듣기에 너무 다른 이 표현의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를 부르셨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이 부르셨다면 당연히 앞질러 그가 눈을 뜨게 되리라는 것을 기대하게 됩니다. 주님은 능력이 있으시고 늘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가 주님을 만났을 때 그에게 주님은 홀로 그를 대하시고 그의 눈에 보이는 어려움 앞에서 필요 없는 질문을 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이 이야기의 결론을 우리는 압니다. 그는 눈을 떴습니다. 예상한 대로 주님은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셨지만 우리는 그 사이에 주님이 그와 나눈 이야기를 놓쳐버리기 쉽습니다. 또 외면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에게 전혀 그런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도 모르는 그저 눈먼 거지로 표현되는 이 사람이 “다시 볼 수 있게”라는 이야기를 주님께 꺼냈을 때 그의 과거와 그가 바라는 세상에 대한 열망을 봅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에게 또다시 세상을 볼 수 있게 허락하십니다. 주님의 능력을 발휘하신 것이 아니라 그가 바란 것을 들어주신 주님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

사정을 알 수 없지만 보통 주님은 이런 기적과 함께 은총을 입은 사람을 집이나 동네로 돌려보내시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을 따라나서는 장면은 당연한 ‘추종’보다 그의 상황을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듯합니다. 세상은 그를 버렸고 외면했으며 그가 돌아갈 곳이 없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또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예수님과 이름 모를 바르티매오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이 내용을 모두 깊이 품어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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