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909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9VOHW0-zImI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세상의 근본과 사람에 대한 고민이 담긴 철학이라는 학문이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모두가 사람을 중심으로 사는 시대에 있지만 언제나처럼 그 생각이 고민을 거치지 않고 고정되어버리는 것은 위험합니다. 뒤틀린 옛날의 안식일처럼 말입니다.
“안식일에”
오늘도 예수님은 안식일에 계십니다. 우리의 근본을 하느님께 두고 있던 이스라엘에서 하느님은 ‘사랑’이라는 개념보다는 ‘모든 것’에 가까웠고 그래서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은 생각과 고민이 필요 없는 ‘무조건’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안식일에 대해 여러번 우리를 곤란하게 하셨습니다.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예수님은 사람들이 모인 회당에서 한 사람을 불러내십니다. 그의 손은 오그라들어 있었고 우리가 말하는 ‘장애’를 가진 상태였습니다. 그가 사람들 앞에 나오기 전 우리는 그에 관해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불행한 사람이고 무엇인가 잘못이 있어 손이 그렇게 된 사람일 뿐, 우리는 같은 회당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은혜를 베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우리 앞으로 나왔고 그를 불러낸 것은 ‘기적쟁이’이라고 불리는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정해져 있는 죄가 될 수 있는 일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율법에 충실했던 의인들의 시선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기대의 시선이 아니라 의심이거나 고발하려는 지독한 편견의 시선입니다. 불편한 사람에 대한 동정심이나 걱정이라곤 전혀 없는 그들이 시대의 의인이었고,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안식일을 정하신 하느님이셨습니다. 그들에게 그 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 해서는 안되는 날이었기에 안식일에 죽어가는 이들을 돕는 것도 죄가 되는 ‘무조건’의 날이었습니다. 하느님이 정하셨으므로가 모든 것의 정답인 상황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그러나 완전히 같아 보이는 상황입니다. 여기에 질문이 던져집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우리의 최선의 결론이 진리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단순한 결론을 좋아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은 생각하게 하셨고 안식일의 의미를 다시 세우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주어진 참된 의미를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이 안식일을 세우신 하느님이셨습니다. 정해진 것의 근본을 생각하지 않으면 이 실수는 분명 반복됩니다.
0:00 오늘의 복음
1:35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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