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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702 오늘의 말씀

松竹/김철이 2024. 7. 2. 07:58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702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HSWcg9LXrFw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주일에 읽었던 복음을 다시 읽게 됩니다. 마태오 복음으로 읽지만 내용은 갔습니다. 호수를 건너가는 배 안에서 태연히 주무시는 주님을 봅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위험 안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제자들을 봅니다. 마치 일상에서 주님과 우리를 보는 듯 읽게 되는 이 복음을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결국 ‘주님이 해결하셨다’는 것에 주목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주님이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시키시는 분으로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을 우리는 위험에서 주님께 매달려야 하는 것으로 알아들어야 할까요? 아니면 주님의 꾸지람에 다른 뜻으로 봐야 할까요.

“주님, 구해 주십시오.”

우선 절체절명의 순간 주님을 찾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주님은 능력이 있으시고 전지전능을 외치는 우리는 우리의 불가능에 해결책으로 주님을 대합니다. 우리의 기도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우리는 위기에 주님께 기도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이상할 것도 없고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꾸지람을 주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같은 의미로 해석하면 제자들의 호들갑에 주님이 노하신 듯 보입니다. 주님이 계시는데 뭘 그리 걱정하느냐?로 듣게 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말씀하신 이 ‘믿음’의 의미를 다시 새기게 됩니다. 신자들에게 그러니 주님만 의지하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어야 하는지 그것이 ‘신앙’에 관한 가르침일지 고민스럽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만약 주님을 깨우지 않았다면 그들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그냥 평범하게 생각해봅니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이런 상황들을 만나곤 합니다. 정도의 차이, 그리고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가 다를 수 있지만 어려움에 서 있다면 크기와 상관 없이 이런 상황일겁니다. 그런데 만약 제자들이 주님의 능력을 믿었든 아니면 주님의 마음을 헤아렸든지 간에 주님을 깨우지 않았다면 그들은 아마도 최선을 다해 노를 저었을 겁니다. 이 상황을 헤쳐나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믿었다 하더라도 그들이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풍랑은 일어나고 배는 계속 물에 덮여가는데 그들은 물을 퍼내고 한쪽에서는 방향을 잃지 않고 노를 저었을 겁니다. 배 속에 곤히 주무시는 주님은 당신을 믿었기 때문에 그리하셨을지 생각해봅시다. 신앙은 무엇입니까?



0:00  오늘의 복음
1:17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