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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611 오늘의 말씀

松竹/김철이 2024. 6. 11. 08:05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611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jaS-P9axVs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하고 선포하여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살아있는 복음이 되셨지만, 그것을 당신 안에서만 가두어두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처음부터 아버지의 뜻을 알고 우리에게 오셔서 심판이라고 하는 모두의 관심사 대신 아버지가 원하신 일을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님은 심판의 이미지 대신 용서를 베푸신 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용서는 하느님만 가능한 것으로 예수님에게서만 주어지지 않고 제자들을 통해 교회에 온전히 넘겨졌습니다. 우리가 복음선포라고 말하는 것은 그래서 그리스도로부터 시작하지만 결국 세상 모두에게 필요한 가치인 용서를 통한 구원의 가능성을 여는 것이며 하느님을 제대로 된 자리에 세우는 것입니다. 단어 자체로 전지전능하신 분이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모든 것 중에 우리를 미워하시거나 판단하시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전해진 사명에도 그 부분은 지켜지고 있습니다. 

“앓는 이들을 고쳐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놀랍게 들리는 이 구체적인 주문은 우리의 실제 세상에 일어나기 불가능한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그런데도 구체적인 상황 안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나누는 용서의 선언은 죄인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이들과 끝난 듯 보이는 세상의 사람들에게 분명한 치유와 소생의 가치로 드러납니다. 누가 고해소에서 자신의 통회 정도로 용서를 얻습니까? 누가 자신의 신앙의 성과로 성체를 영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이 복음이 되어주시고 우리에게 주시지 않으셨다면 불가능한 일들입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복음을 전하는 이는 사도로부터 이어졌고 교회가 시작되었으나 여전히 교회는 이 사명을 전하고 있고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된 이 복음은 여전히 현실이 되어있습니다. 거기에 더 필요한 것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성사를 꾸미는 것은 전혀 필요하지 않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필요하다고 말하는 지혜로 불리는 것들은 거추장스럽기만 하다는 것을 주님을 이야기하시고 교회도 이 부분을 어쩌지 못합니다. 여전히 성체는 식탁만 있으면 충분하고, 용서는 마주 앉아 고백과 용서의 선언이면 충분합니다.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이것이 근본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흥분시키는 것은 모두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은 예수님을 통해 여전히 현실이고 우리 안에 생생히 살아있습니다. 그러니 더 준비가 필요할까 묻습니다.



0:00  오늘의 복음
1:24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하고 선포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