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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424 오늘의 말씀

松竹/김철이 2024. 4. 24. 08:04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424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gtmHwjeb3Ck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부활 제4주간 수요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생애를 담은 복음을 읽어보면 우리가 주님에게서 찾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 배우면서 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심판’이라는 부분입니다. 복음 속 예수님께 심판이나 저주, 그리고 처벌을 받은 이들이 없습니다. 당연히 사람들을 판단하거나 심판할 수 있는 자리에 계시지 않았던 예수님이시지만 그럼에도 하느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사람을 심판하셔도 이상할 것이 없는 주님에게서 이 심판의 장면과 저주와 처벌의 장면은 빠져 있습니다.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우리는 동전의 양면이 있다고 말하고 사람도 장점과 단점이 있다고 말하며 그 중 장점을 키우고 성장하며 선택하고 집중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에게는 선택이나 같은 이치의 배제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어둠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오로지 빛으로 우리에게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을 믿는 사람에게 복이 있고 행운이 있는 듯 우리는 표현하곤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빛이시기에 사실 사람을 가려 비추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누군가의 영역 안에만 존재하지 않으시는 것은 창조주 하느님으로서 당연하지만 정작 우리는 하느님을 자신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 안에 이해하려 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심판은 오히려 그런 우리의 모습을 드러내는 표현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세상의 삶을 분명히 규정하십니다. 

“누가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하여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를 알고 있고, 이것은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서 세상의 심판을 오히려 당하셨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런 수모와 박해, 몰이해와 반대를 받으셨지만 누구도 주님께 벌받거나 심판 받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진실을 비추시는 것으로 당신의 모든 것에 충실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예수님을 입에 올리면서도 끊임없이 심판을 입에 올릴까요?

“내가 한 바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할 것이다.” 

아마 이 말씀 때문이겠지만 그러나 정작 주님이 하시려는 말씀은 이것이 아니었는데도 우리의 걱정을 보면 참 이렇게도 무딘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걱정입니다.



0:00  오늘의 복음
1:43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