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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416 오늘의 말씀

松竹/김철이 2024. 4. 16. 07:57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416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Dx2tpQ0Gd_w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부활 제3주간 화요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이 끝나고 예수님을 찾아 나선 이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행적을 찾아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들의 열성을 칭찬할 자리에서 예수님은 그들의 속마음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들이 주님을 찾은 것은 표징이 아닌 빵 때문이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당신이 벌이신 기적이 아닌 당신을 믿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시지만 사람들은 이내 그렇다면 다른 무엇인가를 보여달라고 요청합니다. 그것과 신앙을 맞바꾸기라도 할 것처럼 말입니다.  

“선생님, 그 빵을 늘 너희에게 주십시오.”

비슷한 듯 전혀 다를 수밖에 없는 예수님과 백성들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진심과 백성들이 원하는 것의 차이는 생각보다 훨씬 거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는 서로 가까워지기 보다 더욱 멀어져가는 상황으로 진행됩니다. 주님이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신 ‘생명의 빵’의 중심에는 당신이 있습니다. 당신을 먹고 마셔야 한다는 이야기의 등장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주님과의 삶. 곧 성체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당시의 사람들에게 주님의 이야기는 ‘불쾌한 이야기’로 취급됩니다. 실제 살을 먹어야 한다는 표현도 그렇지만 그들은 사실 주님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현실에서도 이 차이는 너무나 분명합니다. 신앙을 선택하고 하느님을 믿는 이유가 결국 자신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얼마나 열정적으로 보이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초점 자체의 아주 큰 차이를 말해줍니다. 나를 위해 얼마든 노력하는 것을 두고 ‘열심하다’는 표현은 할 수 있지만 그 끝에는 주님은 들러리나 도구 이상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오시고 함께 하시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인데, 우리가 자신을 위해 산다는 것은 괘변처럼 당연하고 좋은 듯 보일 사람들은 이 차이를 잘 구분해야 합니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주님을 믿으면서도 배고파하는 이들을 봅니다. 답을 찾는다고 말하지만 그 답은 삶의 원리가 아니라 하느님이 주신다는 ‘열매’의 숫자나 크기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게 되면 그들은 결국 주님께 간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을 구분하는 것은 의외로 매우 쉽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열렬히 믿으면서도 늘 배고프다 말하고 목마르다 말할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0:00  오늘의 복음
1:36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