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411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Ug3NAuAEwvs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성 스타니슬라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본당의 주임신부로 살면서 매일 해야 하는 일 중 강론이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강론의 중요성이 너무 강조되고 하느님 말씀보다 그 해석과 설명이 더 중요하게 강조되면서 묵상보다 발표의 공포와 스트레스에 시달리지만 그럼에도 그 보다 강하게 드는 불쾌함은 ‘내가 왜 같은 하느님의 백성에게’ 나무라듯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와 이와 같은 무게로 ’들으려 하지 않는 이들‘을 보는 것의 문제입니다. 물론 신자들은 ‘듣는다’ 말하지만 ‘제대로 준비되지 못한 강론’, 또 ‘좋지만 너무 긴 강론’이라는 솔직한 표현 외에도 신자을 보며 하는 강론은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상태에 빠져 있는 우리들을 보며 사는 삶을 경험하곤 합니다.
“그분께서는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것을 듣고 그분의 시선과 마음을 통해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을 알아듣고 살아가는 것이 신앙의 내용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신앙의 기본입니다. 곧 우리는 그리스도의 모든 것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이라는 전제를 통해 가장 중요한 것을 전해주셨습니다. 그것의 시작은 바로 아버지에게서 보고 들으신 것입니다. 곧 우리의 신앙은 하느님께서 전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신앙의 고민을 듣기보다는 자신의 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현실의 어려움을 나누는 것으로 위안이라도 삼아보려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어떻게 들릴까요? 차라리 감동적인 이야기 하나 이야기하고 또 누군가의 성공담을 말하며 희망을 주는 것이 더 낳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죄의 정당함을 둔둔해주고 상대적인 선함을 차악으로 여기라고 말하는 것이 좋은 목자라 이야기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일반화되는 지점은 모두 예수님의 증언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서로 비교하고 조롱하고 공격하겠지만 뭐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보여주어도, 들려주어도 보지도 듣지도 않는 이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느님이어서 신앙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 말입니다. 사람이 되신 주님은 어려운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신 적이 없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은 수준이나 능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보면서도, 들었으면서도, 또 알면서 하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의 결론을 요한복음은 무섭게 알려줍니다. 바로 ‘하느님의 진노’입니다.
0:00 오늘의 복음
1:34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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