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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330 오늘의 말씀

松竹/김철이 2024. 3. 30. 07:52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330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pc0fANfFMSo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성주간 토요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십자가”

아주 유명한 작품의 스토리가 단 몇일에 일어난 사건임을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처럼 우리 주님의 죽음은 단 몇 시간만에 일어난 순간의 사건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를 기억하고 그분의 가시관과 벗겨진 자주색 옷, 그리고 뚫린 못자국을 기억하며 주님을 ‘고통’이란 단어에 집어 넣어 기억하려 하지만, 오늘 이 시간 주님이 돌아가시고 거의 모든 성사가 정지하는 날. 그날 그 시간 주님의 십자가조차 치워졌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나는 이 사람에게서 죄목을 찾지 못하겠소,”

빌라도의 고민처럼 죄 없는 사람이 죽었습니다. 아침 난데없이 끌려 왔던 유다인의 왕이라 불리며 동시에 나자렛 사람이라고 조롱당하던 한 사람은 휘몰아치는 백성의 지도자들의 요구에 죽음으로 내어 주었습니다. 주님의 고통의 매질이 시작되었던 것은 그 새벽 대사제에게 모독했다는 이유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리저리 사람을 끌고 다니며 사형을 시키기 위한 엄청난 단합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빌라도는 주님을 놓아주려 본보기로 그분에게 채찍을 휘둘렀고, 유다인들을 조롱하려 그분에게 가시관과 왕의 옷과 같은 색을 둘렀습니다. 그런 주님을 죽이려는 시도는 오직 ‘하느님의 백성’들의 몸부림이었습니다. 그들은 순식간에 주님을 골고타로 끌고 올라가 십자가에 죽이고는 또 그보다 빠른 순간에 십자가를 치워버렸습니다. 하느님 구원의 날 파스카 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날. 강론의 자리에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걱정이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그리스도의 인상은 그분을 죽인 이들이 남긴 것을 고스란히 받은 듯 보입니다. 주님의 사건은 성경에 나와 있으나 우리는 그보다는 누군가가 전해준 것을 통해 그 사건을 들여다 보려 합니다. 성경 전체에 주님의 고통의 순간은 단 몇 장에 불과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구원을 가르치셨고, 그분과 우리의 삶은 언제나 행복과 기쁨의 연속이었습니다. 주님조차 희망이 없어 보이는 세상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철부지와 같은 이들로 인해 전해지는 것에 한 없이 기뻐하셨습니다.  

세상은 그때도 지금도 ‘철부지’로 불리는 가난하고 못배우고 없어서 죄가 되는 이들이 훨씬 많은 세상입니다. 그들에게 유일하게 벗이되고 사랑을 주시고 전혀 떠나지 않으셨던 분을 순식간에 없애버리고 그 철부지들에게 살인자의 멍에를 씌우고 주님에게는 고통의 삶이라는 짐을 씌우는 잔인한 세대에 누군가는 눈을 떴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 봉헌한 삶을 살면서도 고통과 외로움으로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이와 또 그것이 이해된다는 이들에게 전하는 볼품 없는 한 신부의 넋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