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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316 오늘의 말씀

松竹/김철이 2024. 3. 16. 08:02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316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eEEOuVmPpio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사순 제4주간 토요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사람은 태어나면서 자신 주위에 이미 마련되어 있는 환경과 상황 속에 ‘던져진 듯’ 
보입니다. 어떻게 해도 극복할 수 없는 한계도 설정되어 있고, 그 대부분의 한계는 
내가 정한 것이 아니기에 극복이 불가능한 것이 됩니다. 곧 ‘나는 괜찮다, 상관없다’ 
해도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으면 나는 여전히 그 한계 속에 자리하고 맙니다. 사람들 
은 아주 시원하게 정리합니다. ‘그게 세상이다.’라고 말입니다.

“저분은 참으로 그 예언자시다. 저분은 메시아시다.”

예수님의 존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님을 마주하는 이들은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 
고 하느님을 있는 그대로 느낍니다. 그분의 말씀과 행동은 하느님을 벗어날 리 없었 
고 주님이 계신 곳의 흐름과 환경은 일시에 바뀌어 버립니다. ‘하느님이 우리와 함 
께 계시다’는 임마누엘의 상황이 벌어집니다.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우리는 사실은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다윗의 후손이 맞다고 소리를 치고 
싶지만 그들이 실제로 본 예수님은 갈릴래아 나자렛 출신이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서 메시아는 베들레헴과 연결될 뿐 이민족의 땅 갈릴래아와 연결되지 않는 것이 그 
들이 지닌 ‘환경’이었습니다.

“너희도 속은 것이 아니냐?”

그 한계에 속박 당한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그 때의 모든 사람들이었습니다. 스승이 
라고 불리는 이들은 하나 같이 예수님을 직접 본 이들의 말을 그들이 가진 한계 안 
에서  쉽게  단정지어  버립니다. 주님이  계신  자리, 지금  우리에겐  주님이  선택하신 곳이 자신들의 동료였거나 삶이었으면 이런 지적은 전혀 반대의 상황이었을 겁니다. 주님이 자신들과 한 패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계신 곳은 갈릴래아였고, 그래서 주님을 보는 이 두 갈래의 시선은 전혀 좁혀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복음 속 이 모습 속에 주님을 다시 봅니다. 주님은 사람들의 편견이나 한계와는 상관없이 오직 하나인 두 가치를 향해 걸으십니다. 하나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 을 이루는 것이고, 그 내용은 사람들 안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곳이 갈릴래아이든 예루살렘이든 사람들이 만든 환경 속에 계시지만 완전히 하느님의 뜻 속에 계신 주님이셨기에 그분께는 사람들의 편견은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뿐이었습니다.



0:00  오늘의 복음
2:12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