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꿀샘

전삼용 요셉 신부님(수원교구 조원동 주교좌성당) | 사순 제4주일 주일복음 특강 | 구약에서 신약으로의 도약: 그리스도 십자가 죽음의 필연성 이해 | 2024.3.10

松竹/김철이 2024. 3. 10. 07:07

[사순 제4주일 주일복음 특강] 구약에서 신약으로의 도약: 그리스도 십자가 죽음의 필연성 이해 I 2024.3.10 I 전삼용 요셉 신부(수원교구 조원동 주교좌성당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BMBjz-GqK-U

 

 

 

나해 사순 제4주일 – 구약에서 신약으로의 도약: 그리스도 십자가 죽음의 필연성 이해

 인간은 집과 같습니다. 집은 그 주인에 의해 정체성이 결정됩니다. 인간은 스스로 하느님이 되려는 무엇을 주인으로 삼고 삽니다. 문제는 그런 주인을 모셔놓고 살다 보니 하느님과 이웃과의 관계가 단절된다는 데 있습니다. 이런 처지에서 구해 주시기 위해 주님께서 오셨습니다. 

 모든 만들어진 것의 반드시 만든 자의 목적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계명’입니다. 자동차가 핸들과 거꾸로 움직이면 큰일입니다. 고쳐질 수 없다면 폐기처분 되는 게 당연합니다. 인간이 창조된 게 맞는다면 왜 인간을 만들어놓고 지옥 보내느냐고 말해봐야 소용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인간답도록 당신 창조 목적인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잘 됩니까? 안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찾아온 것입니다. 그도 십계명을 아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왜 믿어야만 하는지 궁금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세가 광야에서 구리뱀을 장대에 들어 올린 것처럼 당신도 그렇게 들어 올려져야 하고 당신을 믿는 이들만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에 예수님께서 이런 비유 말씀을 해 주십니다. 

 한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유산을 물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평생 모은 것을 일시에 날려버릴 아들에게는 물려줄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높고 험준한 산꼭대기에서 기다리고 두 아들이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열 개의 비석을 찾아서 그 길로 올라오라고 합니다. 첫째 아들은 두세 개의 비석을 지난 뒤 지쳐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형은 아버지가 자신들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동생은 비석에 새긴 글씨가 옅어지는 것을 눈치챕니다. 아버지는 자신들을 위해 비석을 새기며 지쳐갔던 것입니다. 이 말에 형도 여덟 번째 비석까지는 갔지만, 결국 편한 길을 택합니다. 동생도 형을 따라가고 싶었지만, 비석에 새겨진 글씨가 검붉게 된 것을 발견합니다. 아버지가 자신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려고 피까지 흘리셨다는 것을 알고 아버지를 의심한 것을 뉘우쳤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올라 아버지를 만납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형은 불구덩이 속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누구든 무언가를 만들 때 그 안에 땀과 피를 섞습니다. 손흥민 선수도 아무리 축구를 좋아해도 아버지의 고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위치까지 오를 수 없었다고 확신합니다. 자녀에게 힘을 주려 하는데 자신은 편히 쉬며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부모의 뜻은 항상 부모가 자기를 위해 흘리는 피에 대한 ‘감사’로 성취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 했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들어갔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따르지만, 마음 안에서는 여전히 ‘내가 이렇게 많이 봉헌했는데 주님이 주시는 것은 고작….’ 이라고 불평했습니다. 이때 성체에서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라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나’가 내 안의 불평불만인 ‘나’를 죽이기 위해 돌아가셔야만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얼마나 그리스도의 수난 때문에 눈물을 흘려야 할까요?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가 영적으로 몹시 지쳐있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기도실에 들어갔는데 어느 축일을 위해 들여온 성상을 보았습니다. 상처투성이인 그리스도를 표현한 성상이었습니다. 성녀는 깊은 감동에 사로잡혔습니다. 자신 때문에 그런 상처를 받으신 것에 비해 주님께 아주 조금밖에 보답해 드리지 못한 것 때문에 괴로웠습니다. 그분 앞에 엎드려 눈물을 펑펑 쏟으며 성녀는 다시는 주님을 거스르지 않도록 힘을 달라고 청하였습니다(『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자서전』, 9,1 참조). 

 민수기에서 뱀은 이스라엘 백성의 ‘불만’이었습니다. 십계명이 이스라엘의 중심이 되었으나 그들은 여전히 믿음의 부족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하느님은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그들 안에 있는 뱀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뱀을 보내시고 그 치유 방법으로는 또 다른 뱀이 장대에 달리는 것임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을 묵상함으로써 우리에게 오시는 은총의 선물은 우리 안에 자아라는 뱀에 물린 죄의 독이 눈물로 빠져나와 치유되는 열매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봅시다. 사무라이가 되고 싶은 천민 아이도 기둥에 들어있는 어머니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 어머니의 꿈을 이뤄드렸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믿음이 아니면 누구도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믿는다면 그 수난 때문에 항상 ‘감사’의 감정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광고: 『더 높은 기도』 구입처: 하상 출판사 외 바오로 딸 등 출판사, 50권 이상 할인(문의: 031-243-18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