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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219 오늘의 말씀

松竹/김철이 2024. 2. 19. 08:04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219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lASgrL8L2f0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사순 제1주간 월요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오래 전 대희년을 말할 때 그림 하나가 유명해졌습니다. 그 그림은 예수님께서 웃고 계신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 희미하게 기억되는 문구는 “대희년에는 예수님을 웃게 해드립시다.”는 식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웃으시는 예수님에 대한 책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주제에 모두가 새로운 느낌을 받은 것은 우리가 느끼는 예수님의 이미지는 언제나 진지하고 엄하신 듯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분의 삶을 주제로 하는 책을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주님의 이야기라서 그렇게 부르지만 이 단어의 뜻은 “기쁜 소리”, “기쁜 소식”이라 해석됩니다. 주님의 삶이 그렇고 또 그분과의 삶이 기쁘다는 이야기입니다. 

“언제 주님께서”

오늘 복음은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 때의 내용을 자세히 그려주는 듯 펼쳐집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앞에서의 심판이 어떤 것인지 이야기하십니다. 그런데 이 심판의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삶 앞에 대상을 두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름아닌 세상에서 약하거나 죄인으로 불리는 이들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당신과 한 몸처럼 표현하십니다. 그래서 복음 속 주님은 굶주리고, 목마르며, 나그네 처지에 헐벗고 병들었으며 감옥에 갇힌 존재이십니다. 주님은 이들이 당신의 형제라고 표현하십니다.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우리는 신앙을 말할 때 늘 좋은 것을 꿈꾸려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은 한결같이 이 작고 약한 존재들과의 삶이었습니다. 잘 살고 힘이 세고 지혜를 뽐내는 이들은 예수님 앞에서 하나같이 위선자라는 무서운 말씀을 들었고 주님은 언제나 죄인들의 ‘편’인 듯 느껴지십니다. 오늘 말씀처럼 말입니다. 

“저주받은 자들아,”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하느님을 찾고 기도하는 이들마저 그 내용이 복음 속  저주받은 이들과 별반 달라보이지 않습니다. 무서운 이야기이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하느님께 청하는 모습에서 우리가 주님께 바치는 것에 이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작은 이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도 그들과 함께여서 기쁜 일은 없습니다. 그것이 주님 앞에서 드러날 우리의 모습이라면 우리의 노력과 정성이라는 것은 갈 곳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늦지 않게 깨닫기를 바랍니다. 주님 앞에서 심판이란 사랑이 유일한 기준이며 그것은 보여주기가 아니라 진심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0:00  오늘의 복음
3:33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