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꿀샘

전삼용 요셉 신부님|내가 누구인지는 잠들기 직전, 이 한마디로 드러난다/ 사순 제5주간 화요일/ 2023 03 28

松竹/김철이 2023. 3. 28. 07:21

내가 누구인지는 잠들기 직전, 이 한마디로 드러난다/ 사순 제5주간 화요일/ 2023 03 28/ 전삼용 요셉 신부님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IJTtAwzezcc

 

 

 

 

가해 사순 제5주간 화요일 – 내가 누구인지는 잠들기 직전, 이 한마디로 드러난다

 

일본군 성노예로 8년을 살다가 일본의 말도 안 되는 발뺌을 보고는 제일 먼저 당신이 위안부였다고 선언하며 나서신 ‘김복동’ 할머니가 계십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평생을 ‘피해자’로 살다가 ‘인권운동가’로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그분은 마지막 유언으로 “나는 희망을 잡고 살아, 나를 따라”라는 말을 남기셨습니다. 당신의 삶에 후회가 없으신 것입니다.

처음 위안부임을 누구에게도 밝힐 수가 없었습니다. 결혼하고도 아기를 낳지 못하는 이유를 말할 수 없었던 그 가당치도 않은 부끄러움은 오로지 당신 몫이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이런 피해자라는 신분에만 머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당신만을 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당신과 같이 피해를 본 이들이 아무런 보상과 사과를 받아보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고 일본은 위안부나 강제 집용은 강요된 것이 아니라 돈을 벌려고 자의로 한 것이라는 망언을 내놓고 있었고 일본 젊은이들은 전쟁으로 우리나라에 피해를 준 사례가 하나도 없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복동 할머니를 비롯한 위안부 피해자들은 이제 피해자라는 신분을 넘어서서 나라를 바로 세우려고, 더는 힘이 없어, 또 침략받게 만들지 않으려고 장학 재단을 세우고 거대한 세력과 투쟁을 하였습니다.

이분들처럼 어떠한 소명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분들은 많지 않으실 것입니다. 당신 나라에서까지 일본이 화해하자고 한 것을 사과한 것이라 여기고 직접적인 피해자들에게는 어떤 사과도 오지 못하게 만들어버립니다. 단지 돈만을 원한 것처럼 돈을 주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식으로 처리해버립니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김복동 할머니는 돌아가시며 “일본 놈들 해도 너무 하네!”라고 하셨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바로 설 수 없습니다. 죽음 앞에서라도 끝까지 사과받아내려고 한 소명을 가지고 사셨던 김복동 할머니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닌 인권운동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당신 자신이 누구이신지는 우리가 당신을 십자가에 들어올린 다음에 알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피해자라고 그분들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나서야 그분들이 피해자가 아닌 인권을 위해 싸우신 분들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들이 끝까지 소명을 포기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정체성은 그 사람의 ‘소명’으로 드러납니다. 어떤 사람이든 누구의 소명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사탄의 자녀는 사탄의 소명을, 하느님 자녀는 하느님 소명을 실천합니다. 사탄의 자녀 소명은 거짓으로 하느님과 세상과 자신을 속이려 하며 세속-육신-마귀를 추구합니다. 하느님 자녀는 진리를 추구하며 하느님의 소명인 ‘사랑’을 실천합니다. 사랑은 나의 피를 내어주는 십자가의 희생을 수반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정체성은 우리를 하느님이라 믿게 하시기 위해 당신을 우리에게 내어주시는 십자가의 순명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는 아드님의 소명을 당신 성령을 통해 부활로 확증해주십니다. 그 이전에도 예수님 스스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확증하시는 순간이 있는데 바로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마지막 말씀이십니다.

“이제 다 이루었다.”(요한 19,30)

만약 누군가가 누군가를 위해 하루 종일 목숨을 바치는 것과 같은 십자가의 삶을 살고 그 누군가가 편안히 쉬는 모습을 보며 기쁨에 잠겨 눈을 감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부모’일 가능성이 큽니다. 부모는 자신의 소명인 십자가의 삶을 다 살고 하느님으로부터 인정받습니다. 그 뿌듯한 마음으로 “다 이루었다”라며 잠자리에 듭니다. 기쁘게 내어주지 못하면 그 사람은 거짓 십자가를 진 것입니다. 우리도 소명으로 살아갑시다. 그것이 나의 정체성입니다. 김복동 할머니의 마지막 말씀을 되새깁시다. 마지막 때 하신 이 한 말씀이 그분을 피해자에서 인권운동가로 만들었습니다.

“나는 희망을 잡고 살아, 나를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