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꿀샘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20230326 오늘의 말씀

松竹/김철이 2023. 3. 26. 08:21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20230326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1mOh4iPeTAs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사순 제5주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주님,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

 

오늘 복음은 주님이 라자로를 죽음에서 불러내신 사건의 기록입니다. 죽어가는 라자로를 달려가 구해주지 않으신 주님은 그의 죽음의 소식을 듣고서야 길을 옮기십니다. 그리고 그가 장례를 치른 뒤에야 그곳에 도착하십니다. 그리고 평소에 그렇게 극진했던 남매들의 우울한 모습을 보십니다. 우리도 그렇듯 누군가의 죽음은 엄청난 슬픔이며 좌절을 경험시키곤 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누구의 이야기일까요? 이 인사는 마르타와 마리아가 주님께 드린 완전히 같은 내용의 말입니다. 그들의 안타까움이 담겼고, 누군가는 이 인사말이 주님을 탓하는 것으로 느낄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이미 알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이미 알렸는데도 늦게 오신 주님의 느린 걸음의 이유를 묻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처음 마르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결과적으로 살아난 라자로를 알기에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그런 능력을 가지고 계셨기에 그렇고 또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아는 우리니까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마르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마르타의 대답은 이상하리만큼 곧고 바릅니다. .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동생에게 달려가 주님의 오심을 알립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오셨고 동생을 부르신다는 것을 전할 뿐 주님이 오빠를 살려주신다는 내용은 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동생은 언니의 인사를 똑같이 따라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장소는 온통 울음바다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북받치고 산란해지셨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멈추어 생각해봐야 합니다. 주님이 이런 상황에서 마음이 북받치고 산란해지신 이유를 말입니다. 또 이 산란함이 예수님 눈물의 이유가 되었음도 함께 생각해봐야 합니다. 주님은 죽은 라자로를 찾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보기 힘든 예수님의 눈물에 우리는 그 당시의 사람들처럼 라자로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라는 감탄사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다음 장면이 의미하는 바는 어쩌면 그것이 전부는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주님이 라자로를 불러내시려 할 때입니다.

 

돌을 치워라.”

주님,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

 

주님의 앞을 막아선 이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예수님이 믿어라 하셨던 마르타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마르타는 주님을 만류합니다. 그녀의 대답은 완벽했지만 그녀는 사실 주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의 인사도 마찬가지였던 겁니다. 그들 중 라자로의 소생을 믿었던 이는 없었다는 것이고, 라자로는 그들에게 완전히 끝난사람이었습니다.

 

라자로의 죽음은 여러 면에서 주님의 죽음을 미리 보여줍니다. 자신들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받았던 사람, 하느님의 뜻대로 살았던 이가 십자가에 죽었을 때, 사람들은 희망을 버렸습니다. 하느님의 뜻대로 산다면 결국 저렇게 죽는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세상의 결론을 믿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겠지만 그들에게 현실은 하느님과 상관 없는 곳이고, 먼 미래처럼 하느님의 구원을 바라는 처지로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마르타와 마리아 역시 마찬가지였던 겁니다. 그들의 울음소리가 주님을 산란하게 만들었던 것은 그런 굳어버린 고집스런 모습들 때문이었을 겁니다. 오직 주님 홀로 라자로를 살려내야 했던 순간에 주님의 눈물은 흘렀습니다. 그리고 마르타가 그 증거를 보여주었습니다.

 

결국 라자로는 그렇게 살아납니다. 우리는 여전히 주님의 죽음에서 라자로 앞에서 보인 사람들의 모습을 반복합니다. 하느님을 믿고 대답은 잘하지만 실제는 하느님의 뜻 앞에서 굳어버린 모습들은 주님의 십자가와 무덤에서 죽은 예수님을 여전히 생각하는 우리를 보여줍니다.

 

이제 얼마남지 않았으니 곰곰이 생각해볼 일입니다.

 

 

 

0:00 오늘의 복음

6:21"주님,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