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 빈첸시오 신부님|20230323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IQXMe-ggMnE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사순 제4주간 목요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세상은 시간을 흐르며 ‘발전’을 해 왔고,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가 기록한 모든 세상 중 가장 발전된 형태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학문도 문화도 예술도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꽃이 폈거나 혹은 더 새롭고 놀라운 것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유독 하나는 더 줄어들거나 시들어가는 듯 보입니다. 바로 우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유효하지 못하다.”
그리스도교 역시 2천년의 시간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습은 온통 ‘말씀’이라는 것에만 집중되어 있는 듯 보입니다. 다행이도 요즘은 점점 그 한계를 느끼고 있는 듯 보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말씀에 무슨 열쇠가 있는 듯 말하는 이들의 태도는 수많은 그 역할을 맡은 이들을 압박합니다. 그래도 ‘기도’라는 또 다른 방법으로 그 몫을 나누고 있긴 하지만, 이 둘의 공통점들은 현실에서 다소 멀리 있다는 것에서 우리가 하는 이 시도가 결코 ‘발전’이라 말할 수 있는 하느님께 다가가는 것에서는 후진 중이라는 것을 드러냅니다. 이것이 부족하다고 말할 용기는 없지만 그럼에도 이것에서 발견되는 것은 바로 ‘요한의 가치’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요한의 ‘증언’에 주목하고 방법론을 사용하고 있는 중입니다.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미 복음에서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을 믿고 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이 이야기하신 그 증언, 곧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하고 발전시켜야 할 가치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과 함께 당신의 삶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의 모든 가치를 전해주셨습니다. 그럼에도 그 때도 지금도 우리는 그런 주님의 모습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주님은 그 이유를 정확히 말씀하셨지만 너무 겁이 나서 옮기는 못하겠습니다. 대신,
“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는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우리가 아닌지 진지하게 반성해야 합니다. 살라는 것은 하지 않고 듣고 싶어하고 그런 가치가 검증되었다는 이와 친분을 가지거나 좋아하는 것으로 신앙을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요한의 증언에서 시달리지만 그러나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은 바로 옆 그리스도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0:00 오늘의 복음
2:46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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