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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빈첸시오 신부님|20230115 오늘의 말씀

松竹/김철이 2023. 1. 15. 09:25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20230115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r0XLhUAXfBI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연중 제2주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주님이 세상에 오셨음을 우리는 성탄을 통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죽음도 잘 기억합니다. 그분은 마굿간의 구유에서 탄생을 맞으셨고, 그 마굿간의 대들보와 같은 나무로 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기억하는 첫 번째 성탄이고, 구세주의 모습입니다.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오늘 복음 속에 등장하여 주님을 소개하는 이는 세례자 요한입니다. 그는 사람들 중 최고의 품위를 지닌 사람이어서 사람들은 아직도 그의 향기에서 구세주의 모습을 찾는 듯 보입니다. 우리는 분명 그리스도를 알고 있지만, 여전히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생각하고 그것에 어울리는 사람을 찾을 때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머리와 마음에 그리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강한 믿음의 소유자, 영성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세주를 예언한 요한조차 그분에 대해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주님의 오심을 예언한 요한은 자신의 세례와는 달리 주님은 성령의 세례를 주실 것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주님과 비교할 수 없는 사람으로 그분의 신발을 들수도 그 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요한이 주님을 만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그 순간에 요한이 전한 말입니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런데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두 번이나 같은 말을 합니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라는 표현입니다. 그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듯 또 충격을 받은 듯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예언된 그분을 보았으나 그분이 자신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에게 제가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라고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구세주로 보이는 이분은 끝내 죄인들의 세례, 곧 물로 씻는 세례를 받으십니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요한은 정말 그 장면을 보았습니다. 세례를 청하는 분에게 나타난 표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말이 안됩니다. 주님은 내 뒤에 오시는 분이지만 내 이전에 계셨고, 또 내 위에 계신 분이신데 눈 앞에 나타난 사람은 죄인들 속의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거짓말처럼 말씀하신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요한의 이야기를 자주하는 편이지만 사실 제 입장이 그래도 당황스러웠을 겁니다.

 

이럴 리가 없는데...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주님의 시작은 현실적이어서 더 믿기가 어렵습니다. 적어도 주님은 우리가 엄두도 내지 못할 분이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너무 똑같으면 기대감도 무너지고 감흥도 없습니다. 우리가 살기는 좀 그래도 모두가 좋은 삶을 지향하고 살기에 주님이 우리와 다름 없으신 삶을 산다면 그분을 믿고 따르기는 좀 그럴 수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게 현실이니까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사람들은 세상에 잘 산다는 사람들에게 동경과 시샘 비슷한 마음을 가집니다. 모두가 욕을 하면서도 부러워하고 어쩔 수 없는 벽에 무너지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신앙에서도 같은 태도를 보입니다.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그 두께를 알 수 없는 벽이거나 깊을 알 수 없는 심해와 같은 존재, 혹은 너무 높아서 쳐다보기도 힘든 것처럼 말합니다. 착하게 살라는 말에도 쉽게 나는 예수가 아니다라는 말로 회피하곤 합니다.

 

그러나 요한이 만난 알지 못했던 분은 사람들 사이에 계셨고, 사람들과 함께 사셨습니다. 같은 밥을 먹고,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세상 안에 머무셨습니다. 주님은 한 번도 왕이 되신 적이 없었습니다. 세상이 지금도 기억하는 나자렛은 예루살렘에서 죽었어도 벗어날 수 없었던 굴레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을 따를 수 없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그리고 매 주일, 아니 시간만 허락한다면 매일 주님의 성체를 영하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말이 얼마나 잘못된 말인지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그렇게 해서 누구나 가능한 구원을 주셨습니다. 어떤 처지에서도 주님은 선하셨고, 행복하셨습니다. 물론 그분 곁에 머문 우리가 모두 행복했다는 것은 더욱 분명하구요. 주님이 우리에게 이미 하느님이 함께 하심을 가르쳐주셨기 때문입니다.

 

구세주를 처음 본 요한의 혼란을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다양성은 존중해야겠지만 처음부터 주님을 너무 멀리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도 사실 모른다...”는 말만 반복하게 될테니까요.

 

 

 

0:00 오늘의 복음

1:34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