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 빈첸시오 신부님|20221209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PeAktMHM2yQ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대림 제2주간 금요일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예수님이 처음 세상에 오셨을 때, 그분의 눈에 비친 사람들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주님 곁에 모여든 군중을 보시고 주님은 사람들과 세상의 모습을 표현하십니다.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서로 마주하며 어떤 것도 거부하는 이들의 모습 속에 일치는커녕 옳은 것 하나를 발견할 수 없는 고집불통에 혼란스러운 상태를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장터에 앉아 서로를 공격하는 아이들의 소리들로 사람들을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모두가 하느님을 믿고 있지만, 어떤 것에도 동의하지 않는 이들은 그야말로 말로만 하느님을 말할 뿐, 어떻게도 하느님의 뜻을 지킬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믿는 우리의 모습은 그처럼 다양하지만 그 어느 하나에도 하느님을 볼 수 없는 것은 모든 것을 자신의 기준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선택지가 될만한 두 인물을 소개하십니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세례자 요한은 사람들이 모두 구세주로 여길 정도의 존경을 받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고행과 기도의 삶을 보고 존경하고 두려워하면서도 그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요한이 ‘미친’ 사람처럼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하며 그에게 세례는 청하지만 그의 삶에 동참하지는 않습니다. 죄를 짓고 심판 앞에서는 두렵지만 그렇다고 하느님의 사람이 부럽지는 않았던 셈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
그리고 요한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는 그리스도를 두고서는 너무 ‘가치가 떨어진다’라고 말하고 ‘가볍다’라고 말합니다. 모두와 함께 살고 삶 안에서 하느님을 말하는 이는 별 흥미가 느껴지지 않고, 더군다나 그가 사람을 가리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 도무지 어떤 것도 하느님의 뜻으로 여기지도 따를 생각도 없는 이들이지만 그들은 자신들을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불렀습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는 요한도 주님도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자리에서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지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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