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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빈첸시오 신부님|20221120 오늘의 말씀

松竹/김철이 2022. 11. 20. 09:57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20221120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uUeIcikueVw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

 

오늘은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그리고 연중 제34주일입니다. 한 해의 끝 한 주간을 남긴 주간 첫날입니다. 우리는 오늘을 시작으로 한 주간 동안 한해살이를 마감합니다. 그리고 그 마무리의 주제는 언제나처럼 그리스도를 우리의 왕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

 

우리 구세주 예수님은 당신 생애의 마지막, 모든 사람들 위에 처음으로 올려지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는 다름아닌 십자가였고 그 위에서 처음으로 사람들의 왕이라 불리시지만 그것은 조롱이 가득담긴 이야기였습니다. 지금도 십자가 위를 차지하는 주님 죽음의 명패에 그분은 ‘유다인의 왕’이라 적혀 있습니다. 그 속에 담긴 뜻은 ‘고작 이 사람이’라는 비웃음이 섞여 있습니다.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

 

우리 모두가 아는대로 우리 구세주는 자신을 구원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시의 눈으로 보자면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는 구세주이니 무능함을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주님을 구세주로 섬기는 우리는 우리의 신앙과 하느님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대게 나 자신을 위해 신앙을 가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구하지 않는 신에게 자신을 구해달라고 청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면 참 신앙의 길이 어렴풋 눈에 들어옵니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사람들, 곧 십자가를 바라보는 이와 또 함께 십자가에 달린 이가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의 시작은 당신 자신을 살려보라는 요구입니다. 누군가를 살리겠다는 사람이 자신을 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조롱 섞인 이 이야기는 지금 우리에게도 가장 아픈 지적이 되고 있는 부분일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부터 챙겨야 다른 것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께 이 말은 응답할 이유가 없는 말이었습니다. 자신부터 살리는 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십자가에서 주님은 또 한명의 죄인을 구원하십니다. 마지막까지 그분의 일은 우리를 구하시는 일이었고, 끝까지 마지막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우리 왕으로 고백하는 마지막 주일에 우리는 우리 왕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자신부터 구하려 하지 않는 임금. 그 임금을 믿고 따르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가 타고난 하느님을 닮은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돕고 채워주고 사랑하며 사는 존재입니다. 사랑하는 존재이기에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사랑하는 것이고, 우리에게 처음부터 결함으로 존재하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바람은 간절하고 노력하지만 결코 채워지지도 마냥 기쁨으로 남지도 않는 것이 자신을 향한 사랑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미련과 집착, 그리고 거기서 오는 고통에 시달립니다. 이제 그것이 마치 ‘시대 정신’인 것처럼 이야기되고, 종교에서도 자신을 사랑하라는 권고를 사람들에게 계속 전하는 시대에 들어와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우선 내려와야 다른 이들을 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듯 보입니다. 이런 이야기에 같은 뜻이라고 동의하지 않을 이들의 반대를 미리 보지만, 사실 이 표현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자기 연민 속에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을 뻔히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한 해를 정리하고 평가한다면 그 기준은 단 하나, 나의 행복 정도를 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사랑하신 주님을 따르는 것, 비슷하게가 아니라 그분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판단 기준이어야 합니다. 생각해보면 지금 세상에 그 사랑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거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그분이 내려 오시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 주님을 우리는 다시 기다리는 것으로 한 해를 시작한다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0:00 오늘의 복음
1:48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