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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빈첸시오 신부님|20221115 오늘의 말씀

松竹/김철이 2022. 11. 15. 08:37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20221115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I9vpHygMDzk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키작은 자캐오에 대한 인상을 쉽게 지워지질 않습니다. 우리는 돌무화과나무를 만날 때면 그 위에 올라선 자캐오를 잊지 않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자캐오는 그런 동화속 주인공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는 돈을 가진 재산가이자, 권력을 가진 세관장입니다. 그리고 그가 그 재산을 모은 방법은 악랄하기 그지 없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이 말은 주님을 집에 모셔들인 자캐오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의 말이 그의 무죄함을 변호하는 자기변명이 아니라면 이 말은 그가 지금까지 그 재산을 만들어 온 방법에 대한 자기 증언입니다. 그는 주님 앞에서 자신의 무죄함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있는 중이고, 그리고 이제 자신의 삶이 다를 것임을 말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가진 바의 절반을 가난한 이에게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갚으며 살겠다고 선언하는 중입니다. 물론 약속이어서 그것이 현실이지는 않지만 우리의 불편한 시선과 의심 속에 그는 자신의 약속을 시작해야 하는 지점에 스스로 서 있습니다.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세상에 여러 사람들이 있고, 그 중 우리는 도저히 구제불능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리보다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마음놓고 이야기하고 판단해버리지만 우리보다 어떤 면에서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욕하면서도 부러워하곤 하는 우리입니다. 자캐오는 거기에 해당하는 사람이라서 그저 죄인이라고만 부르기에 어려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런 이를 너무 쉽게 용서하시는 예수님을 대하는 시선에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그러나 예수님의 선언은 분명했습니다. 그는 약속에 지나지 않은 이야기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자, 잃어버린 사람이 됩니다. 하느님의 구원은 위와 아래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현실의 우리는 자캐오를 곱지 않게 보면서도 부러워하며 그들의 잘못을 방기하고 때로 이용하려는 태도를 버리지 않습니다. 또 동시에 그 부러움을 가난한 이들과 힘겨운 삶에 동정 이상의 감정을 소모하지 않으려 하는 것도 현실입니다. 주님은 그들을 모두 하느님의 자녀로 이끄시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래저래 우리가 장벽을 만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그 장벽을 우리가 세운 것은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하느님이 아니라 말입니다.

 

0:00 오늘의 복음
1:54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