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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빈첸시오 신부님|20221103 오늘의 말씀

松竹/김철이 2022. 11. 3. 09:17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20221103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I5So8fAyJcU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위령성월이라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복음 말씀이 왠지 하늘나라에 관한 이야기로 초점이 모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심판에 관한 주제에 유독 취약한 우리이기에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자주 힌트를 주시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예수님이 우리 안에 사셨을 때 사람들이 가진 이미지는 예수님은 “죄인들의 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람들이 하느님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들은 “죄 없는” 삶을 최고로 여겼고, 그래서 죄와 죄인을 미워했습니다. 그 자체로는 잘못일리 없고 나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라면 큰 문제에 빠집니다. 누구도 죄를 짓고 살고자 하지 않지만 누구도 죄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느님을 말하면서도 최고의 기준을 ‘무죄함’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죄인들과 식사를 하시고 말씀을 나누시니 당연히 이해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과 하느님의 말씀이 있어야 할 자리는 따로 있다고 생각했으니 말입니다.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양 한 마리가 무리를 놓친 것은 여러 이유가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 무리를 이탈한 것이 죄라면 양은 한 마리의 가치를 잃지 않습니다. 죄와 그 죄를 지은 사람을 분리해서 생각할 이유가 여기에 있고, 주인에게 이 양은 다른 양과 전혀 가치가 달라지지 않았기에 그는 모든 것을 다해 이 한 마리를 구하기 위해 길을 나섭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라 말하면서 그 불행한 일 때문에 사람을 놓치는 것이 합당한가 하고 예수님은 질문을 하십니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죄는 악하고 나쁩니다. 그러나 우리 하느님은 그 죄에 물든 이들조차 그 죄에서 돌아서서 돌아오기를 바라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심판하신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 모두는 그분 심판을 피하지 못하지만 우리의 부족한 삶에도 그런 하느님이 있어서 든든하지 않습니까? 사나 죽으나 말입니다.

 

 

0:00 오늘의 복음
1:54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