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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빈첸시오 신부님|20221031 오늘의 말씀

松竹/김철이 2022. 10. 31. 08:38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20221031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12G_9a9bD-U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지금 세상은 ‘사랑’이라는 단어가 난무합니다. 여기저기서 사랑한다는 표현이 가득합니다. 예전 무뚝뚝한 부모 자식의 관계는 간데없고 이제 ‘사랑합니다’라는 인사는 가장 흔한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부모자식, 연인, 친구, 형제 할 것 없이 모두가 사랑의 표현에 익숙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중 핵심이고 가장 중요한 말도 사랑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듣기에 너무나 좋기만 합니다. 그런데 세상이 말하는 사랑과 주님의 사랑은 닮았지만 또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좀 섭섭한 구석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말씀은 너무나 단호하고 소위 ‘여지’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한다고 말할 때는 상대적인 경우가 많이 존재합니다.

 

사랑은 주고 받는 일종의 ‘관계’, 혹은 ‘거래’처럼 사용될 때가 많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로 표현해도 순수하게 일방적인 사랑이 아닌 쌍방이 주고 받는 것이 이상적이라 말하는 우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용하는 사랑, 곧 하느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사랑은 그런 우리의 사랑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 사랑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에서부터 온전하고 일방적인 특징을 지닙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주시는 것이라는 것이고, 우리에게 가르치신 사랑도 받았으니 주거나, 주면 받게 되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의 가르침은 극단적이고 일방적입니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식사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고 윗자리를 기웃거리는 사람들을 보시며 주님은 당신을 초대한 이에게 식사를 초대할 때 자신의 자리를 생각하는 이들을 부르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부르면 당연히 되갚을 것이고 그것으로 또 다른 관계가 완성되거나 어긋난다는 것을 주님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보답할 수 없는 이들을 초대함으로써 그의 사랑을 완전한 것으로 만들어라고 가르치십니다. 온전히 누군가를 돕거나 함께 자신의 것을 나누기 위해 초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보답할 것이라 말씀하시지만 사실 이런 사랑은 보답을 전제한 사랑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런 거래를 하지 말기를 바라십니다. 사실 그 자리에 주님을 초대한 이도 주님을 어디에 모셔야 할지 걱정하셨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주님은 그 자리에 죄인들과 함께 가셨을 것이 뻔합니다. 아무것도 갚을 것이 없는 사람들, 그리고 심지어 당신조차도 그랬을 것을 아는 우리입니다. 사랑은 그렇습니다.

 

 

0:00 오늘의 복음
1:07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