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 빈첸시오 신부님|20220918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GsPizqtd8yQ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오늘은 우리나라의 모든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성인이 되신 모든 분들을 위해 온 세상 교회가 기억하는 소중한 날이기도 합니다. 후손인 우리에게는 순교자로 대표되는 처음 신앙을 받아들인 이들을 기억하고, 우리가 믿는 이 신앙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저마다 신앙을 표현하는 기준도 방법도 다르지만, 그 모든 것의 근본에는 틀림없이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세상 모든 성인들을 보는 기준도 그들이 주님을 얼마나 사랑했고, 따르려고 했는가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모두가 그리스도처럼 살겠다는 공통의 모범과 목표가 있습니다. 혹시나 주님의 은혜를 받아 살고자 하는 이유를 가지고 있다면 근본이 빠진 길을 걷고 있으니 당장에도 길을 되돌려야 할 일입니다.
“자신을 버리고”
우리 순교자들에게 하느님은 그런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아니 그 때 하느님에 대해 알게 된 우리의 조상들이 일으킨 변화가 그랬습니다. 하느님이 세상을 만드시고, 그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하느님을 닮은 존재여서 누가 귀하고 천하다 말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만든 삶의 굴레서 벗어나 모두가 자신의 근본을 알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참 사람됨의 이치라는 것을 알아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때의 우리는 신분제도 속에 있었고, 그 무지막지한 벽 앞에서 서로를 차별하고 경쟁하며 살아가는 중이었습니다. 어쩌면 정반대 아니 완전히 다른 삶의 가치가 닿았으니 그들이 겪었을 혼란은 컸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작지 않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당연하겠지만 이 믿음을 받아들인 것은 양반이지만, 그 내용은 양반보다 아래 계층의 사람들에게 더 큰 울림을 일으킵니다. 이름도 없이 태어나 살았던 이들이 자신의 가치가 생겼고,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가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거의 모든 역사가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는 이름을 남길 수 있고, 글도 적을 줄 아는 이들의 기록들로 과거를 되짚어가지만 실제 우리 조상들의 믿음의 대부분은 그런 신분제도의 아래층에 살던 이들의 믿음이었을 겁니다.
하느님의 세상이 얼마나 좋았으면 그들이 목숨으로 증거했을까요? 지금과 같은 세상에 같은 이유의 박해가 일어난다면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은 순교의 길을 천국영복의 길이라 말하며 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아니 우리의 삶을 놓고 박해자들이 우리를 순교시킬 판단을 할까요? 우리의 믿음과 사랑은 그처럼 세상을 바꾸어 놓을 만큼 서로를 끔찍이 사랑하고 행복한 삶을 이루어내고 있을까요? 세상에 저런 사람들이 있는가 싶을 정도로 선하고 정직한 사람들. 모두가 서로에게 모든 것에 모든 것이 될 삶을 사는 것이 순교 이전 우리가 생각해야 할 선조들의 믿음입니다.
사람들의 우스갯소리로 ‘글로 신앙’을 배운 조상들이 우리의 조상들입니다. 그런데 그 글이 진짜 현실이 될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도 우리 조상들입니다. 우리가 그분들의 후예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기뻐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모습에서 그들을 볼 수 있을 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0:00 오늘의 복음
1:16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