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곳에서 물을 붓다.
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
높이 솟구친 산 위에 물을 붓는 것 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습니다. 물은 낮은 곳에 부어야 그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럼에도 하느님은 세상이 보기에 어리석어 보여도 모두에게 아낌없이 물을 주시고 다행인 것은 높은 곳에 부어도 물은 낮은 곳으로 찾아 간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세상을 그렇게 아름답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많은 이들이 복음을 듣지만 복음은 교만한 이들을 벗어나 낮은 이들에게서 효력을 발합니다. 예수님이 전한 복음은 바리사이들에게는 심판으로 가난한 이들에게는 구원의 소식으로 전달되었습지 다. 질료는 같지만 효과는 전혀 다르게 이루어집니다. 마치 소독약이 병균은 죽이지만 손은 깨끗이 하는 것과 같습니다.
2독서는 이런 현실을 우리에게 알려준줍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을 보지만 죄인들에게는 두려움과 심판이 보이고 하느님의 자녀들에게는 무한한 영광이 보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의 말씀은 교만한 이들에게는 상처에 붓는 물 같았지만 가난한 이들에게는 희망의 복음이었습니다.
심지어 1독서는 거만한 자의 재난을 경고하고 거기에는 약도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치료제 자체를 거부하기 때문에 그 어떤 약이 주어져도 의미가 없게 됩니다. 그리고 그럼 그들의 마음의 교만은 서로 짖밟으며 위에 올라가느라 정신이 없다보니 분쟁을 일으키게 마련이고 서로 죽이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마치 의자를 놓고 그보다 많은 수의 사람이 차지하려고 다투는 게임처럼 서로를 증오하며 다투게 마련입니다.
시리아 장군 나이만은 병을 치유하려거든 요르단 강에서 일곱번 몸을 씻으라는 예언자의 말에 화를 냅니다. 왜냐하면 스스로의 분별이 예언자의 식별보다 뛰어나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고해성사는 선물되지만 사람들은 그 쉬운 요르단 강을 좀처럼 이용하지 않습니다.
결국 복음은 제 길을 찾아갔습니다. 가난한 백성들이 소식을 들었고 그들은 기뻐하였으며 그 일은 오늘날도 여전히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입니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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