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믿음의 찬가 연중19주 주일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HxPFxSMdpS0
믿음의 찬가
우리는 신앙생활을 합니다. '신앙'이라는 단어 자체가 믿는다는 뜻입니다. 믿을 신자와 우러를 앙자로 구성된 이 의미는 바로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 믿는다는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너무나도 자주 '종교활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왜 믿는지를 고민하지 않고 믿음을 실천하지 않는 생활, 그러나 종교적 색채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생활이 바로 종교활동입니다.
예를 들어 미사를 옵니다. 종교적 냄새가 물씬 납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의 습관이 된 생활일 뿐 내가 왜 성당에 오는지 그 의미를 찾지 못합니다. 그래서 내가 성당을 오게 만드는 세상적인 이유가 사라지고 나면, 즉 성당 안에서의 친교, 인간관계, 재미난 활동, 여러가지 현실적 도움과 같은 것들이 메마르고 나면 성당에 발길을 끊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모습이 됩니다. 젊은 시절 그렇게 열정적으로 교리교사를 하던 이들이 그 직분을 내려놓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고 나면 너무나도 쉽게 냉담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다시 본래의 주제로 돌아와서 우리는 이 '신앙'이라는 것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 신앙이라는 것, 믿음이라는 것은 인간의 가장 근본에 깔려 있는 영적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실 현세를 살면서도 많은 '믿음'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대학을 지향합니다. 그 대학이 우리에게 보다 나은 삶을 보장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속에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통할 시대가 있었고 아닌 시대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대학을 나오면 그 이후의 진로가 탄탄대로였지만 이제는 아무리 대학을 나와도 취직도 되지 않고 도리어 시간만 허비한 느낌을 주는 경우도 생깁니다.
돈이라는 것도 우리는 막연한 믿음 속에서 추구하고 있습니다. 돈을 지니고 있으면 많은 것이 보장될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돈으로 살 수 없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진실한 우정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이도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훌륭한 영적 가치도 돈으로 구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성경 안에는 시몬이라는 사람이 사도들의 능력을 돈으로 사려고 시도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믿음이라는 것을 알게 모르게 이미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으로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뒷통수를 얻어맞기도 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올바른 대상이 필요하고 나아가 반드시 '시험'이라는 것이 필요하게 마련입니다. 그것이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여러 표상들에 대한 서술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성인들의 활동은 읽어보면 알 것이고 저 역시도 믿음의 체험이 존재합니다. 선교지로의 여행은 말 그대로 맨땅에 머리를 부딪히는 체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믿음은 제가 그 시기를 충실히 완수해 내도록 이끌었고 결국 믿음 안에서 저는 남부럽지 않은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지금 이 본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가지 불확실성이 존재했고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보이는 것이라고는 빵 다섯 개에 물고기 두 마리 뿐입니다. 그러나 저는 믿었고 아직도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저의 이 믿음에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겠다는 의지와 하느님께서 그것을 바라신다는 믿음이면 충분한 것입니다.
우리가 지닌 믿음의 최종장은 '죽음' 이후에 다가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세에서 믿다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즉 믿음의 열매를 보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앙인인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살아남아 우리의 믿음이 응답받는 과정을 지켜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세의 것을 소비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 속한 것을 얻어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믿음의 구체적인 형태이고 완성이 될 것입니다.
그저께는 병환 중에 있는 식관 자매님의 작별 인사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 동안 집안에서 버티다가 결국 병원으로 입원해 들어간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작별인사 속에서 분명한 믿음의 확신을 얻습니다.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고 그때에는 아픔도 수난도 고통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깨어 주인을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아멘.
마진우 요셉 신부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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