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길

주현미 - 빨간 구두 아가씨 (1963)

松竹/김철이 2022. 6. 24. 16:56

주현미 - 빨간 구두 아가씨 (1963)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uMIE3Khu6H4

 

 

 

 

 

노래 이야기

 

요즘 저는 매일 아침, 라디오 방송 러브레터를 진행하기 위해서 여의도 KBS로 향하는데요. KBS가 여의도에 자리 잡은 것은 1976년부터였습니다. 원래는 방송국들이 정동에 있었지만, 6.25 전쟁으로 잿더미가 돼버리면서 가건물에서 방송하다가 남산으로 옮겼고요. 20년 세월 동안 KBS 남산방송국 시절이 있었고, 1976121. 지금의 여의도로 터를 옮긴 거지요. 그래서 원로 방송인들 중에는 남산방송국 시절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그때는 남산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고, 그 앞에는 방송인들이 즐겨 찾던 산길다방도 있었고, 방송국 옆에는 라라국민학교가 있었는데요. 그 시절 남산방송국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은 버스에서 내려서 남산기슭에 있는 방송국까지 언덕길을 걸어 올라갔고, 점심시간에는 동해루에서 30원짜리 짜장면 한 그릇이나 40원짜리 명동 칼국수를 사먹곤 했습니다.

 

작사가 하중희 선생님도 바로 그렇게 남산 KBS의 추억을 갖고 있는 분인데요. 1960년대 KBS에서 일하면서 여러 히트 곡들의 가사를 썼던 하중희 선생님은 1963년의 어느 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 일찍 버스에서 내려 남산 방송국까지 걸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빨간 구두를 신고 또각또각 소리를 내면서 남산 소월길을 걸어가는 한 아가씨의 모습을 보게 됐고요.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하중희 선생님은 즉흥적으로 떠오른 노랫말을 원고지에 써내려간 후, 당시 KBS 악단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던 작곡가 김인배 선생님에게 건네주었지요. 그리고 그렇게 탄생한 노래가 바로 전설적인 명곡. 남일해 선배님의 빨간 구두 아가씨입니다.

 

빨간 구두 아가씨1963년에 발표되자마자, 어마어마한 사랑을 받으며 히트했는데요. 스윙풍의 경쾌한 리듬과 멜로디를 멋들어지게 노래한 남일해 선배님의 매력적인 저음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요. 남일해 선배님은 이 노래를 통해서 최고의 스타가수가 되었고, 세간에는 빨간 구두열풍이 불었습니다. 여자라면 누구나 빨간 구두를 한 켤레씩은 신어야 멋쟁이라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시중에는 빨간 구두가 모두 품절되는 사태까지 생겼다고 하니, 그만큼 빨간 구두 아가씨는 가요계뿐만 아니라, 패션계까지 접수하며 큰 사랑을 받은 노래였습니다.

 

 

솔솔솔 오솔길에 빨간 구두 아가씨

똑똑똑 구두소리 어딜 가시나

한 번쯤 뒤돌아 볼만도 한데

발걸음만 하나 둘 세며 가는지

빨간 구두 아가씨 혼자서 가네

 

밤밤밤 밤-길에 빨간 구두 아가씨

똑똑똑 구두소리 어딜 가시나

지금쯤 사랑을 알만도 한데

종소리만 하나 둘 세며 가는지

빨간 구두 아가씨 멀어져 가네

 

 

빨간 구두 아가씨가 발표되자마자 엄청난 히트를 기록한 것은 그 당시 사회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면서, 전쟁 이후 회색빛에 가까웠던 사회 분위기는 조금씩 화사한 색채로 바뀌면서 활기를 찾기 시작했는데요. 이 시점에 발표된 노래가 바로 1961년 한명숙 선배님의 노란 샤쓰의 사나이1963년 발표된 남일해 선배님의 빨간 구두 아가씨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가사와 제목에 화사하고 강렬한 색채감을 담은 두 곡은 단순한 노래 이상의 역할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밝고 강렬한 희망의 의지를 심어줬는데요. 전쟁 이후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와 보릿고개의 그늘 아래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노란 샤쓰의 사나이빨간 구두 아가씨, 가난과 이별, 슬픔과 눈물 같은 테마 대신 유쾌한 리듬과 실생활을 노래한 가사를 들려주며 마음을 환기시켜주었고요. 새로운 변화를 갈망하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빨간 구두 아가씨1963년 뉴스타레코드에서 발매한 남일해 선배님의 독집음반에 수록된 곡입니다. 독집이 드물었던 1960년대 국내 음반 시장의 현실을 고려한다면, 남일해 선배님이 독집 음반을 냈다는 것은 이미 그 당시 인기가 상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남일해 선배님은 1957년 고등학교 3학년 재학시절, 대구 대도극장에서 열린 오리엔트 레코드사 주최 전국 콩쿠르에서 특상(대상)을 받아서 가수의 길을 걷게 되었고,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나화랑 선생님에게 발탁되어 1959'비 내리는 부두'로 데뷔하며 매력적인 저음의 가수로 주목받았습니다. 그리고 찾아온 산장’ ‘첫사랑 마도로스’ ‘이정표’ ‘빨간 구두 아가씨등의 노래들이 크게 히트하면서 당대를 풍미했던 가수 최희준 선배님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기도 했고요. 이미자, 박재란, 현미, 한명숙 선배님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1960년대의 가요계의 르네상스 시대를 이끌었지요.

 

제가 진행했던 음악토크쇼 인생앨범 예스터데이에서 남진 선배님과 남일해 선배님이 함께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남진 선배님이 내가 대스타라고 한다면, 남일해 선배님은 대대대대스타였다라고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올해로 가수 데뷔 63주년을 맞을 때까지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남일해 선배님을 보면, 음악 속에서 숨 쉬고 살아가는 천생가수란 사실을 실감하는데요. 앞으로도 여전히 건강하신 모습으로 인생의 고단함을 덜어주는 멋진 노래들을 중후한 저음으로 오래오래 불러주시길 바랍니다.